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메모다. 앉으나 서나, 머물거나 걷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남기는 것.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목록에도 보란 듯이 메모가 존재한다. 나 역시 중요해서, 필요해서, 좋아서 메모를 하는데늘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줄기차게 메모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며 무엇이 더 나은지 저울질하다가 최근 새로운 장비를 마련했다. 블루투스 키보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거늘, 노상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손가락 몇 개로 기록하는 게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MZ세대는 엄지손가락 두 개로 다다다 빠르게 자판을 누른다지만, 난 텍스트를 입력하는데 오른쪽 검지 손가락만 쓴다. 멀쩡한 아홉 손가락은 논다. 열 손가락으로 빠르고 능숙하게 자판 치는 능력을 두고 한 손가락으로 오타를 남발한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1분이면 끝날 메모를 내내 붙잡고 혼자 버럭한다. "우이쉬!"
메모 시간을 단축할 방법은 열 손가락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그러려면 노트북과 아이패드여야 하는데 쓸 거리가 생각날 때마다 바로바로 펼치기 쉽지 않다. 매 순간 손에 들고 다니지도 않을뿐더러, 전원을 켠다, 부팅될 때까지 기다린다, 프로그램을 연다, 는 매우 작은 수순이 기록을 귀찮게한다. 다음에 노트북을 켜면 그때 하리라 마음 먹지만 조금 전 튀어 오른 아이디어가 반복 재생되는 건 흔치 않다. 물 흐르듯 해도 시원찮을 판에 덜커덕덜커덕 자꾸 걸림돌이 생기니 결국 메모의 빈도와 양이 줄었다.
블루투스 키보드는 어쨌든 메모를 하고 조금이라도 더 글을 쓰고픈 자의 고육지책이었다. 키보드를 착 펼치면 핸드폰과 블루투스로 자동 연결된다. 바로 열 손가락을 얹고 경쾌하게 손을 놀리면 텍스트가 일사불란하게 핸드폰 화면에 박힌다. 초고 수정하다가, '그래 이런 걸 다음에 써야 해'라는 생각이 들면 핸드폰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다. 책 읽다가도, 글 피드백을 하다가도, 심지어 글을 쓰다가도 다른 글 쓸 거리가 떠오르면 납작한 자판의 날개를 펴고 신나게 친다. 정말 사소한 것까지, 생각날 때마다, 마구마구, 정제하지 않고 남긴다. 휘리릭휘리릭, 술술.
이런 것들이다. '글을 고치려니 저항감이 말도 못 한다. 매 초마다 싸운다. 덮어, 참아.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다', '존재감 없는 아이들, 과잉보호', '늦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이 기특해야 하는데 늦게 자는 게 걱정이다. 만날 잔소리', '너른 카페, 듬성듬성, 소곤소곤', '생활의 질서, 엄격함'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글감이 될 후보들이다. 왜 이걸 메모로 남겼는지 의아할 때도 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신묘하게 묶이고 완성된다. 이를테면, 1번 메모에 휘갈겨 쓴 '결국 내 글쓰기는 남을 위해야 성장하는 것'과 5번 메모의 문장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더해져 글이 모양을 갖춰간다. 아는가, 이 짜릿함을!
(좌)내 손의 노트북과 아이패드, 그리고 블루투스 키보드 (우)지인과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장문의 카톡을 보내야했다. "잠깐만요!" 그리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열었다.
메모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작가들은 부지기수다. <쓰기의 감각>을 쓴 앤 라모트는 "집 안 도처에 색인카드와 펜을 비치해 두었다"라고 했다. 침대 머리맡, 욕실, 부엌, 전화기 옆, 그리고 자동차에도. "나는 개를 산책시키러 나갈 때도 뒷주머니에 색인 카드 하나를 넣어간다. 어떤 이유에서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발견할 때면, 얼른 카드를 꺼내 몇 마디 단어로 압축하여 휘갈겨 쓴다. (중략) 상황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대화나 반전 있는 대사를 엿듣거나 생각해 낼 경우, 그것도 압축해서 적어 넣는다." 그녀가 색인카드를 애용한 건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이었기 때문일 게다. '상황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대화나 반전 있는 대사'는 글 쓸 때 무척이나 필요한데 막상 쓰려면 참으로 생각나지 않는다. 내 글의 리얼리티를 더하는 절묘한 예시들! 상상력이 풍부해 실제 존재할 법한 이야기를 지어 쓸 능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러하지 못한 자에겐 지나가듯 남긴 메모가 글에 생명력을 더한다. 타인의 글과 다르게 만드는 고유함, 공중에 둥둥 뜨는 글에 발을 달아 땅에 딛고 서게 만드는 생생함이 여기에서 나온다.
제대로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도 글쓰기에 더없이 도움 될 생각이 등장한다. 산책할 때, 샤워할 때, 설거지할 때, 운전할 때. 애정해 마지않는 블루투스 키보드조차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선 핸드폰을 들고 중얼거린다. 오래전 봤던 영화 <썸원라이크유 someone like you> 주인공인 애슐리 주드는 남자친구에게 차인 후 자꾸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 수컷들의 행태를 연구한 후 나름 '한물 간 암소' 이론을 체계화해 칼럼을 쓴다. 이때 했던 게 녹음이었다. 그녀는 기다랗게 생긴 녹음기를 손에 쥐고 맨해튼 거리를 거닐면서 미친 사람처럼 떠들어댔다. 기록하고 싶은데 적을 수 없을 때면 뉴욕에 있는 그녀가 생각났다. 난 핸드폰 녹음 기능을 켜고 독백처럼 읊어댔고, 며칠 후 이를 모티브 삼아 거대한 퀼트 같은 글을 완성했다.
각 잡고 제대로 뭔가 하려면 도리어 잘 안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특히 아무 재료도, 아이디어도 없는 상황에서 책상에 앉으면 시곗바늘만 하염없이 돌아간다. 써야 해서 쓰는 것보다 미리 쟁여놓은 것들에서 하나 탁 골라내는 여유.멋지지 않은가. 거기에 농익은 사색의 결과를 더하고 유려하게 고치는 정성으로 마무리. 늘 바라는 글쓰기다.
며칠 전 난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고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이내 블루투스 키보드를 열고 노트앱에 적기 시작했다. '카페 탈퇴하는 법, 그가 사라졌다, 무서운 촉이란' 언젠가 '육감'에 관한 글을 쓸 때 분명 예시로 적절하게 쓰일 것이라 믿는다. 메모는 반듯하게 정돈될 리 없어서 자주 이상하다.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세상에 유일한 글이 탄생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기록을 하는 편이 낫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가끔은 이런 낙서를 누가 읽을까 싶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으로 작은 금괴를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회고록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