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최고령 글벗, 그의 마지막 인사

'나의 인생에 등장해주어서 고마워요.'

by 오르

그를 만난 건 2년 전, 광주시문화재단에서다. 일 년간 글쓰기 강좌를 맡았는데 그곳에 반백의 그가 있었다. 일흔이 넘은 그의 눈빛은 형형했다. 청춘을 바쳐 일하고 물러난 자의 연륜이 묻어났다. 자신의 취향을 알고 취미를 향유하는 노년의 여유가 보기 좋았다. 암 투병 중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깨달았을 그에겐 배우는 자의 겸손이 있었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나자 그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암 투병 중이라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듯합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인생 마지막을 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책을 낼 수 있을까요?" 2023년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해 겨울, 그는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를 냈다. 아내와 자녀,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그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그는 두 번째 책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했다. 그 짧은 시간 암세포는 온몸에 퍼져 있었다. 방광에서 폐로, 그리고 뇌로. 집 안에서 걷다가 방향 감각을 잃고 넘어졌고 운전하다 어이없는 접촉사고를 냈다고 했다. 수십 년간 익숙하게 쳤던 컴퓨터 자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자꾸 오타가 난다고도 했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요즘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런 일도 생기네요. 허허." 허탈하게 웃는 그에게 할 말을 찾았지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에서 세 개가 되어버린 암과 싸우면서 어렵사리 글을 썼다. 9월 중순, 바람에 습기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의 글은 반듯하고 단단했다. 극심한 통증으로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에서 28편의 글을 쓰고 고쳤다. 직접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는 자신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구술했고 둘째 딸이 대신 받아 적었다. 두 번째 책은 그렇게 그의 마지막 기력을 끌어모아 완성됐다. 그가 쓴 후 내가 읽고 의견을 드렸고 둘째 딸이 받아 수정해서 내게 넘겼다. 나는 다시 읽고 글을 손봤다. 두 번째 책은 자신이 떠나는 날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 셋은 그해 말 출간을 목표로 함께 부지런히 쓰고 읽고 고쳤다.

선생님의 두번째 에세이집


“내년 벚꽃 구경하러 가는 게 소원입니다.”

2년 전, 첫 책 준비하며 그는 벚꽃이 필 때까지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의 바람을 담아 책 표지에 만발한 벚꽃을 넣었다. 그의 글을 수도 없이 읽고 고치고 표지 디자인을 결정하고 마지막 인쇄를 넘기면서 매 순간 난 기도했다. '오래오래, 선생님의 소망처럼 여든다섯 살까지 봄마다 벚꽃 보며 살게 해 주세요.' 이듬해 그는 흐드러진 벚꽃 사진을 내게 보냈다. 첫 책 표지 그대로였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벚꽃 사진

올해도 가족들과 퇴촌에 벚꽃 구경하러 가겠다고 했었다. 올해 꽃샘추위는 대단했다. 새 계절이 오는 걸 이렇게 시샘할 수 있단 말인가. 메마른 겨울바람이 불었고, 때아닌 눈이 내렸다. 꽃이 피기에 봄은 너무나 차가웠다. 올 듯 말 듯 유난히 더디 도착한 올봄, 그는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 벚꽃을 마주하지 못하고 하늘로 떠났다. 향년 73세.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 장례식장 입구엔 막 입을 벌린 벚꽃봉오리가 촘촘했다.


사는 게 바빠서 안부를 여쭙지 못했을 때도 선생님은 일상의 단상을 적은 글을 보내며 내게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의 글은 너무나 반듯해서, 난 그가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남은 나날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잊었다. 이제는 그의 단아한 글을 볼 수 없다는 게, 그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야 비로소 깨달아져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돌아보니, 선생님은 나를, 내 실력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그저 믿고 맡겨주셨다. 조카뻘인 나를 늘 깍듯하게 대해주셨다.


선생님의 마지막 페이스북 글


"몸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어 정리수준을 다급하게 하게 됩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가 다르고 다음 주 선생 만나면 항암 포기하고 호스피스 찾아 갔으면 합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건 알지만 마약성 진통제도 잘 안 듣는 상황 속에서 이 고통은 참기가 너무 힘드네요.

또 글을 써서 보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으면.... 내 인생의 무대에 등장해주셔서...그것도 거의 끝날 무렵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은 딸에게 책 준비했다 전하라고 말하려 합니다. 글로서 삶을 살리는 가치있는 일에 큰 진전이 있기를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그가 마지막을 예감하고 내게 보낸 메시지. 며칠 후, 선생님 생각이 나서, 많이 힘드실 것 같아서, 정말 생과 사를 오가실 것만 같아서 연락을 드렸다. 내가 여쭌 안부에 선생님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나의 인생에 등장해주어서 고마워요.'

그의 프로필은 어느새 마지막 인사로 바뀌었다. 그는 나의 최고령 수강생이자 마음을 나눈 글벗이었고,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존경할 수 있었던 인생 어른이었다.

'선생님, 그동안 많이 감사했습니다. 고통 없는 천국에서 이제 편히 쉬세요. 나중에 그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