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대학 진학,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이들이 지금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건 7년 전이었어요. 공교육을 과감히 접고 대안학교에 아이들의 학창 시절을 걸었죠. 초등 6학년부터 중등, 고등과정까지 아이는 작은 학교에서 10대의 전부를 보냈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속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몸 담기까지 선택과 결정이 쉽진 않았어요. 오랜 시간 많이 고민했고 적잖은 반대에도 부딪혔지만, 아직도 떠오릅니다. 입학 캠프에 참여한 후, 합격자 명단에 두 형제의 이름이 나란히 오른 걸 확인했을 때 그 기쁨이란! 간절히 마음에 품었던 학교가 아이들을 받아줬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어요. 은근히 편 가르며 잘난 척하던 동네 엄마들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우린 이제 너희와 달라!' 괜한 우월감도 생겼더랬죠.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했어요.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이 설렜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가장 두려워하는 벌이 '내일부터 학교 가지 마!' 일 정도였죠.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200명이 넘는 작은 학교는 가족 공동체였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 앞에 서서 아이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교장선생님을 아이들은 '학교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살뜰히 헤아렸고 아이들은 힘들 때마다 선생님을 찾곤 했어요. 우리의 통학 거리는 왕복 50킬로미터였지만 학교와의 심리적 거리는 무척 가까웠습니다. 큰아이는 학교에서 숙식할 방법을 고민할 정도였어요. 할 수만 있다면 학교 근처로 이사하고 싶었어요. 그만큼 학교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믿었습니다.
물론 7년이란 세월이 마냥 좋았던 건 아니에요. 초등과정은 천국 그 자체였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자랐고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일찌감치 말했어요.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는 일에 관심이 없다고. '좋은 대학' 보내려면 다른 학교로 가는 게 나을 거라고요.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성실함을 최고 덕목으로 여겼지만, 엘리트 교육을 표방하지 않았어요. 절대 평가 체계여서 아이들은 학업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성적으로 줄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진로는 현실이잖아요. 아무리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어도 대학 진학을 다음 단계로 삼는 이상,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결국 아이들은 경쟁 사회로 뛰어들게 되니까요. 학교의 이상이 때론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여겨졌어요.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이렇다 할 학교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큰아이가 이제 졸업합니다. 초등에서 중등, 그리고 고등으로 올라갈 때는 각 과정을 '수료'했던 터라, 아이 인생에서 첫 졸업입니다. 따뜻하고 든든한 울타리를 넘어 이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사실 아직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어요. 미국 유학을 계획 중이라 졸업을 코앞에 두고 여전히 원서를 쓰고 추가 서류를 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학기가 달라서 보통 버거운 게 아니에요. 일주일처럼 지나버린 듯한 7년을 돌아보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없네요.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수없이 오갔던 학교, 기쁘고 즐겁고 속상하고 안타까우면서도 돌아보면 그저 감사했고 행복했던 시간. 아직은 아이의 졸업이 실감 나지 않아요. 졸업식 후 허무함에 시달릴 것 같습니다. 적어도 어미인 저는요.
무슨 일이든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구요. 학업, 활동, 관계 모든 면에서 아이는 최선을 다했고 더없이 성실했어요. 친구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인생 동지들로 만났으니 이만으로도 아이에겐 복이라고 봅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웠으니 이로써 충분합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 잘할 수 있다는 마음만으로도 아이는 거친 세상에서 우뚝 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아, 시간은 언제 이리 흘러간 걸까요. 졸업식에서 너무 많이 울까 봐 벌써부터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