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묵은 집

by 오르

#가게 뒤에 집이 있었다. 나의 집은 엄마, 아빠의 이불가게 뒤편. 이불이 쌓인 틈 사이 커튼을 걷고 미닫이 문을 드르륵 밀면 안방이 나왔다. 따끈한 온돌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고 숙제를 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문을 밀고 가게로 나가 엄마 옆에 앉았다. TV를 보고 놀다가 손님이 오면 엄마는 발딱 일어나 맞이했고, 난 다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 뒤에는 부엌과 화장실로 연결되는 좁은 복도가 있었다. 겉문만 달아 공간을 나눈지라 난방이 되지 않았다. 그늘진 그곳에 숨어있던 쥐들이 가끔 튀어나와 날 놀라게 했다.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어여 도망가. 시꺼먼 쥐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싫었다. 방문을 열기 전 일부러 쿵쿵 인기척을 낸 후 숨을 골랐다. 화장실에 가는 게 두려웠다. 볼 일을 꾹 참는 버릇은 어쩌면 그때부터 생겼는지 모른다. 지금도 외출하면 화장실에 잘 가지 않는다.

#가정부 언니가 머물던 창고방을 수리해서 아빠는 나와 여동생 방으로 내줬다. 신발을 신고 오가던 부엌도 엉덩이 깔고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남동생이 태어나 삼 남매가 되자 그마저도 부족했다. 낡은 집은 부분적인 수리만으로는 여의치 않았다. 할아버지가 부모님께 신혼집으로 마련해 준 가게터는 부모님이 소유한 유일한 땅이었다. 부모님은 결혼과 동시에 가게를 열었고 시내 중심가에서 꽤 잘 나가는,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 나름 이름 있는 가게로 일으켰다. 부모님은 고민 끝에 집을 헐고 건물을 올리기로 했다. 가게 문을 닫을 수 없어서 근처 창고에서 임시로 단골 장사를 이어갔고,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댁으로 들어갔다.

#건축이 마무리될 즈음, 아빠는 큰딸인 내게 가장 먼저 방을 선택할 권리를 줬다. 삼 남매가 머물 4층에서 가장 안쪽 큰 방이 내 차지가 됐다. 마음에 쏙 드는 침대와 책상, 책장을 세트로 골라 넣었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번듯한 내 공간이 생겼다. 친구들이 선물로 준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걸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카세트테이프를 진열하고 가슴 콩닥거리며 읽던 순정만화를 책장에 채웠다. 친구들을 불러 파자마 파티를 했고, 가장 친한 친구와 고3 수험생활 중 일부를 내 방에서 같이 공부하며 보냈다. 4층 욕조를 깨끗이 닦고 물을 가득 채워 반신욕도 즐겼다. 대학에 들어가선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한동안 주말마다 집에 내려왔다. 타지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집에 들르는 횟수가 줄었다. 결혼을 앞두고 피부병으로 고생할 때는 회사에 병가를 내고 한 달간 집에 머물렀다. 아빠와 함께 숲을 찾아다녔다.

#삼 남매가 차례로 떠난 집에는 나이 들어가는 노부부만 남았다. 두 분은 평생 그곳에 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가게 셔터를 내렸다. 가게 문을 닫았어도 손님에게 연락 오면 엄마, 아빠는 뛰어 내려갔다. 먹고사는 일에 대한 두 분의 성실함은 여전했지만 그 사이 동네는 변했다.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이 이어지는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도시 속에 가게 주변은 구도심으로 쇠락해 갔다. IMF 사태가 터지고 인터넷 세상이 열리고 AI 시대가 도래했지만, 먼지 날리며 이불을 꺼내서 손님에게 보여주던 두 주인은 반 세기동안 지속한 생계활동을 버리지 못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건물도 함께 나이 들어갔다. 풍화작용 속에 바위가 깎이듯 문틈은 벌어지고 벽지는 힘을 잃어 이곳저곳 떨어졌다. 작은 틈 사이로 바람이 들었고 비가 오면 물이 새는 곳도 생겼다. 손재주 좋은 아빠는 직접 집을 고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집에서 계단을 수십 년 동안 매일 오르내리느라 엄마의 무릎은 닳았고, 전등을 고치다 의자에서 떨어진 아빠의 팔목은 산산조각 났다.

#불편함마저 익숙해져 버린 공간은 변화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여름이면 덥게, 겨울이면 춥게, 번거롭고 고생스러워도 사는 게 원래 그렇다는 듯, 그래야 할 수밖에 없다는 듯 체념해 버린 부모님을 그곳에서 빼내야 했다. 삼 남매가 힘을 모았다. 생전 아파트 생활을 해본 적 없는 두 분을 모시고 집을 보러 다녔다. 70대 노인 둘에게 안락한 공간을 내어드리기 위해 주말마다 두 딸과 사위, 아들, 손자가 모여 회의를 했다.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가기를 여러 번, 어렵사리 아파트 한 곳을 결정했다. 번쩍번쩍한 아파트 단지가 거대하게 들어서는 신도심도 마다하고 10년 넘은 아파트를 고쳐 들어가기로 했다. 두 분이 평생 오가던 교회 근처, 시장 근처여야 한다는 생각은 지켜드려야 했다.

#이제 이사를 한다. 엄마, 아빠가 부부가 된 지 48년 만에, 건물을 올린 지 30년 만에. 30년 묵은 집에는 그만큼의 추억과 살림이 그득했다. 아들, 딸이 번갈아 가며 집을 치웠다. 노쇠한 두 분이 살뜰히 관리하기엔 집이 너무 컸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엔 먼지가 두텁게 쌓였다. 반짝이는 새 그릇을 켜켜이 쌓아두고 왜 이 빠진 접시를 쓰고 있었는지, 더는 쓰지 않는 잡동사니를 왜 그리 끌어안고 살았는지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한숨이 샜다. 딱히 둘 곳 없고 쓸데없어도 버리기 아까워서 오래된 가구를 이삿짐에 넣으려는 엄마와 며칠을 큰 소리로 실랑이했다. 그 와중에 난 곰팡이 핀 책 가운데 몇 권을 챙겨 들었다. 용돈을 쪼개 사 모았던 카세트테이프와 중학교 졸업 선물로 받았던 워크맨도. 어쩌면 엄마의 마음도 이 같은 게 아니었을까. 낡고 허름해도 내 것이라, 오십 평생 자식 셋을 키우면서 쓰고 모았던 물건이라, 차마 버릴 수 없는 삶의 궤적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주신 피아노가 남았다. 다른 건 다 버려도 피아노만큼은 처분할 수 없다. 내 어렸을 적 그토록 갖고 싶었던 보물. 육중한 피아노를 어찌 옮겨야 하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