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못하겠습니다"

by 오르

자꾸 넘어진다. 어지럽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눈밑은 푹 꺼져 그늘졌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전어회를 먹고 식중독으로 고생했던 지난해 가을이 떠오른다. 냉동꽃게로 담근 간장게장만으로 겨우내 밥을 먹었던 것도. 설마…. 동네 병원에 갔더니 빈혈이란다. “큰 병원에 가보세요.”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해야 했다. 다음 날, 결과까지 듣는데 오후 1시면 끝난다고 했다. 시간 맞춰 병원에 도착한 아내와 집에 돌아오니 저녁 6시가 다 되었다. 녹초가 됐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그는 의사에게 호통 치며 화를 냈다. “당신이 의사요?” 당황한 아내가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다급히 말한다. “진단 결과를 못 믿겠으면 가만히 듣고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으면 되지 그 앞에서 뭐 하러 소리를 쳐요.” 의사는 뭔 죄인가. 본 그대로,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끌어모아 의견을 냈을 뿐인데 왜 환자의 느닷없는 분노를 받아들여야 하나. 예기치 않은 이야기에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 없었던 아내와 달리 의사는 큰 요동이 없다. '갑작스러운 선고를 듣고 어쩔 줄 몰라 분노하는 환자는 당신 말고도 많았어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듯.


죽음학 대가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5단계의 감정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부정에서부터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 '그럴 리가 없어.' 병명을 들은 그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잘못됐다고 믿고 현실을 부정했을 것이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왜 나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날 수 있지?', '뭐가 문제야? 누구 탓이야?' 소용돌이치는 화는 그를 뚫고 나가 앞에 앉은 의사에게 꽂힌다. 그의 인생 3막 1장쯤에 '하얀 가운을 입고 담담하게 환자를 맞이하는 의사'로 잠시 등장한 자에게.


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큰 병 앞에서 이제껏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낸 생활을 더듬어본다. 막막함과 두려움, 어이없음, 후회, 미련. 밀려드는 감정에 대응할 적확한 단어를 찾는다. 혼란스럽다. 친구들과 85세까지 살자고 농담처럼 건넸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은 인생인 줄 알지만 같은 세월을 보낸 친구들과 다짐했던 게 떠오른다. 몇 번을 거듭할 때마다 하루, 이틀, 일 년, 이 년씩 삶이 늘어날 것만 같다. "암 아닙니다, 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일상에 자주 발동되는 자기 암시와 외부 선포처럼 그는 자꾸 되뇐다.


끝이 있는 인생. 지금 당장인가, 곧인가, 한참 후인가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이 땅에서 생을 마무리할 때가 온다. 마냥 계속될 것 같이 살아가는 인생과 끝이 머지않아서 마음을 다잡고 살아가는 인생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게 더 값질까. 몸에 이상이 없었다면 깨우치지 못했을 인생의 진리. 정해진 기한,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인생을 흘러가게 두지 않고 하루하루 간절함으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감사가 어디 있겠는가. 무방비 상태로 살다가 어느 순간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주어진 시간을 정성껏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여생이 어디 있겠는가.


시아버지는 근래 가슴이 답답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 걷다가 자주 멈춰선다고 했다. 병원에 모셔다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병원엔 잘 다녀오셨는지 안부 전화를 드리자 시어머니는 나즈막하게 말했다. "얘, 주말에 바쁘니? 시간 될 때 아범이랑 왔다 가라." 아무리 캐물어도 답을 듣지 못한 나는 수 분 뒤 남편을 통해 전말을 듣는다. 갑작스러운 소식 앞에서 인간은 때때로 현실 감각을 잊는다. 머나먼 남의 이야기를 듣듯, 바람결에 사라질 허무한 이야기를 듣듯, 슬픈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자꾸 멍해진다.


오늘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다. 장기를 채우고 있는 커다란 덩어리가 별 게 아니기를, 아니 마법처럼 사라지기를 바란다. 행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미 들은 진단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해도, 아버님에게 평안이 깃들기를 기도한다. 여생을 후회 없이, 미련 없이, 그의 숨겨진 따뜻한 마음이 여과 없이 가족들에게 표현되기를. 오늘은 두 분을 모시고 병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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