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인연>
나이 마흔이 넘으면 이리 살고 싶다는 모습이 있었다.
스무 살 청년 시절, 시기별로 이루고픈 꿈을 적었는데 다른 건 기억나지 않지만 이것 하나 떠오른다.
'40대, 원숙미 넘치는 인생'. 원숙미라는 게 뭔지는 알고 썼을까. 충분히 숙달되어 능숙한 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이게 사전이 말하는 원숙미다.
글을 쓰는 일도,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듯싶다. 10년간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시간이 실력이 되어 자신감이 생긴 게다. 경험이 주는 힘,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은, 적어도 30대였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원숙한 건 맞나 보다.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을 읽으며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인생 선배의 연륜을 본다. 살아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지혜를 글로 남겨놓은 건 그래서 고마운 일이다.
멋있는 사람은 가난하여도 궁상맞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
스물셋, 미국 남부 여행 중 머물던 민박집에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했다. 운전하던 이는 차에 기름이 다 떨어져서 멈추게 생겼다며 거듭 말했다. 알 듯 모를 듯 그녀의 말속 뉘앙스를 눈치 빠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차에서 내렸다. 분명 나 들으라고 했던 이야기였을텐데 말이다. 한 푼이 아쉬웠던 시절,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 싶던 게 아니었을까. 다시 만날 일 없는 외국인인데 그 순간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이었을 거다.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난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듣지 않았다. 그저 인색했던 거다. 달러 몇 장 건네는 여유가 왜 없었을까. 한국사람은 다 저리 매정하냐며 그녀는 내 뒤통수에 대고 분명 욕했을 거다.
세상은 큰 성공을 말한다. 나도, 너도, 누구나 이리되어야 한다고. 빨리 달려야 한다고. 작은 것에 연연하다 세월 다 지나간다고. 숨 쉴 때마다 휙휙 돌아가는 시대, 내가 고민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다른 한편에서는 널린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조급해지고 때론 숨이 턱 막힌다. 그들을 따라 달리려다 내팽개쳐진 내 일상을 마주하게 되면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하여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 하루 한 순간 아이들과 밥을 먹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그 순간이 소중하다. 할 일이 많다며 종종거리다가도 문득 두려워질 때가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큰 것을 좇겠다고 내 옆의 진정 소중한 작은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늘같이 맑은 눈을 가진 사람, 명랑하면서도 애수가 깃든 사람, 원숙하지만 생각이 낡지 않은 사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나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만 수줍어할 때가 있고, 뜻을 굽히지 않다가도 밑질 줄 아는 사람.
향긋한 커피와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에 사치를 부리지만 낭비는 절대 아니하는 사람, 돈의 가치를 알지만 얽매이지 않는 사람, 돈이 아니라 시간에 인색한 사람.
마음의 빈자리를 아쉬워할지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 않는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하는 매력을 가진 사람, 받아서는 안 될 남의 호의를 정중하고 부드럽게 거절할 줄 아는 사람.
무엇보다 과거의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 곁에 둔 사람에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기쁨을 주는 사람. 이런 모습으로 늙어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