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어느 나이고 다 살 만하다

by 오르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 사십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 만하다.



스물 한 살 쯤이었을까.

인생 계획을 세울 기회가 있었다. 20대에는 열심히 준비해서 언론사에 들어가고 30대에는 결혼을 하고 40대, 50대, 60대 때마다 이랬으면 좋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스물 갓 넘어 어찌 60대 인생을 점칠 수 있었겠는가. 그저 막연하게 주변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러하리라' 생각했을 뿐이다.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데 40대를 꿈꾸며 쓴 건 어렴풋이 떠오른다. 원숙미가 흐르는 여성, 내 이름 박힌 책 내기.


그 사이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피천득 선생의 표현처럼 '호탕하게 낭비하지도 못하고, 하루 하루를, 일주일 일주일을, 한 해 한 해를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 불이 잘 붙지도 않는 젖은 짚단을 태우듯 애쓰고 용쓰며 하루 하루를 산 게 비단 선생뿐이겠는가. 나 역시 하루 살다 보니 일주일이 지났고 한 해가 갔다.


30대엔 일하랴, 아이들 키우랴 어찌 지났는지 모르게 휘리릭 날아갔다.

더 잘 살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왜 없을까. 가끔씩 옛 기억, 특히 내가 못나게 굴었던 일, 지혜롭지 못했던 일, 여유롭지 못했던 일이 생각나 수없이 이불킥을 날린다. 혼자 얼굴이 벌게지고 표정이 굳는다. 그마저도 누가 볼까 부끄럽다. 그나마 감사한 건 아이들이다. 어미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잘 자라 준 두 아들을 보면서 그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난 30대 초반에 마음이 머물러 있다.


두 아들과 온몸으로 뒹굴며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던 마음도, 나 자신을 생각하면 그저 미숙하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스물 청년 때 뭔지도 모르고 썼을 '원숙미'가 내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변함없다. 충분히 숙달되어 능숙한 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엄마로, 아내로, 글 쓰는 사람으로 내게 능숙한 아름다움이 풍겨나기를 소망한다.


'어느 나이고 살 만하다'라는 선생의 말처럼 난 마흔이 훌쩍 넘어간 인생의 어느 자락에서 하루를 산다. 어제는 마흔 후반에 접어든 남편의 생일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서른이었던 '오빠'는 어느새 쉰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어간다. 한 해 한 해 미역국을 끓이며 우리는 함께 늙어간다.



남편생일케이크_20210821_132435888_01.jpg 라라프로젝트 선생님 한 분이 남편 생일 케이크를 보내주셨다. 덕분에 생일상이 빛났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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