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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Dec 08. 2021

엄마가 글 쓰면 대박 난다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자 남자아이들 중심으로 축구모임이 형성됐다.

엄마들 중 가장 막내였던 내가 모임의 대표, 총무, 서기를 맡았다. 열 명이 넘는 엄마들이 모여 축구클럽을 어디로 정할지, 간식은 어떻게 담당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축구 대회 준비와 아이들 생일파티까지 실로 많은 말이 오갔다. 수시간에 걸쳐 나눈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단체 채팅방에 올리는 건 내 몫이었다. 어렵지 않았다. 그저 핵심만 추려서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쓰면 됐다. 채팅방에 글을 올릴 땐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쓰는 게 관건이다. 모호하게 읽히는 단어를 지우고 행위의 '주체'가 누군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누가 한 말인지, 누가 해야 할 일인지 드러나지 않으면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긴다. 무엇보다 쉽고 간결하게 쓰는 게 포인트다.


엄마들은 내가 올린 공지 메시지에 감탄했다.

"00엄마, 난 아무리 들어도 못 쓰겠던데. 도대체 애 키우기 전에 무슨 일을 한 거야?"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저 톡 메시지 하나 올렸을 뿐인데 그들은 내 경력을 궁금해했다. 내 '과거'를 밝히면 그녀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어쩐지. 다르더라." 이런 거 잘하려고 기자 한 건 아니었는데.


'기자' 엄마의 글쓰기는 시시때때로 유용하게 쓰였다. 스승의 날, 학기 말이면 난 선생님들께 감사 카드를 적어 보냈다. 고마운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 담으면 감동 어린 답변이 돌아왔다. 글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릴 때 더 효과적이었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석연찮은 반응을 보였을 때, 아이가 친구들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난 흥분을 가라앉히고 메시지를 보냈다. 축구클럽의 수업 진행 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때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글로 부당함을 전했다.  글을 쓰면서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정리했고, 상대는 거듭 읽으며 내가 무엇을 문제로 여기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글로 마음을 전하면 대부분 억울한 마음이 풀리고 상황이 개선됐다. 물론 글을 쓴다고 모든 문제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을 붉히며 뒷목을 잡는 대신 우아하게 내 인격을 지킬 수 있었고, 상대와 관계도 원만히 유지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엄마가 글을 쓴다는 건 든든한 무기였다. 큰아이가 정부기관에서 주최하는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하길 원했다. 어미로서 열심히 원서를 썼다. 외벌이로 학원 보낼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영재학급 지원할 때도 아이의 면모를 성실히 '있는 그대로' 기술했다. 후에 담임이 서류를 보고 "어머니, 어떻게 아이를 이리 훌륭하게 키우셨어요?"라고 물어 의아했던 적도 있다. 아, 우리 아이가 훌륭했던가... 없는 일을 만들어내거나 사실을 부풀린 적은 없다. 그저 매끄럽게, 읽히기 좋게 썼을 뿐이다. 공들여 쓴 원서는 때마다 '합격'을 선사했고 아이는 배움의 기회를 누렸다.

무엇보다 엄마가 글을 쓰니 아이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뉘 집 아이들처럼 논술학원에 보내지도, 그렇다고 내가 빈틈없이 교안을 만들어 아이들과 일대일 수업을 하지도 않는다. 엄마가 끊임없이 쓰고 있으니 아이들은 무언가 쓰는 일이 낯설지 않다. 심심하면 낱말을 주고 이야기를 만들라고 했고, 잘못하면 반성문을 쓰게 했다.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끄적거리며 글의 얼개를 짜 본다. '명색이 엄마가 기자인데 너도 글을 잘 써야지'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기자는 엄마일 뿐 아이가 아니다. 엄마가 기자여서 아이도 잘 쓸 거라는 세간의 시선이 아이에게 부담일 수 있다. 글쓰기를 거들지도 않는다. 아이의 글에서 어른의 미심쩍은 도움이 느껴지는 것만큼 어색한 것도 없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유롭게 쓰게 둔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글을 특출나게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글쓰기에 겁을 내지도 않는다. 큰 아이는 에세이를 뚝딱 쓰고 둘째는 블로그를 신나게 한다.



기자로 훈련한 글쓰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빛을 발했다. 글로 밥벌이를 했을 뿐 잘 쓴 단어, 문장 하나가 사소한 일상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세상에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일, 동시에 돈도 잘 버는 일이 넘쳐나는데 왜 난 매일 노트북을 끌어안고 글자 더미 안에서 허덕이나 자조했다.


글은 말과 같이 일상에서 두루 쓰이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메시지를 보내고 SNS에 글을 올린다. '오늘부터 글을 쓸 테야!'라며 마음을 다잡고 종이에 써야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미 간단한 단어와 문장 몇 개로 우리는 수많은 글을 생산하고 있다. 메시지 하나로 누군가의 마음을 다독이고 어려웠던 관계가 개선된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원활하게 해결된다. 오늘,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의 방향을 돌리고 바라는 것을 얻기도 한다. 당근 마켓에 물건을 팔고 윗집의 층간 소음을 잠재우는 일도 글쓰기로 처리한다. 일상의 글은 이토록 강력하고 효과적이다. 특별한 경우, 특정한 사람만이 글을 쓴다는 건 오래된 편견일 뿐이다.

세상에 글을 잘 써서 불리할 직업은 없지만 엄마만큼 글쓰기로 확실한 유익을 누리는 자리 또한 없다. 공지 잘 날리는 00엄마로 칭찬받을 줄 알았다면 날 그토록 '갈구던' 선배들을 조금 덜 미워할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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