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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Mar 23. 2022

감정이 요동칠 때 글을 쓴다


같은 일을 두고 유난히 예민한 이들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소하게 일어나는 일을 두고 이리저리 돌려 생각한 후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리는 이들. 그 가운데 가장 부정적인 결과를 이미 상정하고 입 밖으로 내어 타인과 공유하는 이들이 있다. 작은 일이 부풀려지고 원래 의도와 달리 곡해되기 시작하면 별 것 아니었던 게 별 게 되어 버린다. 어느 조직이나 이런 이들이 있겠지만 난 특히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이같은 경험을 종종 했다.


축구 클럽을 결정하거나 특별한 날 선생님 선물을 준비하는 등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건 매번 쉽지 않았다. 특히 축구, 농구, 수영 등 체육 그룹수업을 받을라치면 일은 더 복잡해졌다. 각자 학원 스케줄로 바쁜 아이들 모두가 가능한 시간을 취합해 어떤 요일에 만날 지를 정할 때면 카톡방은 불이 났다.


무엇 하나 결론 나지 않은 상황인데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손해겠다 싶으면 여지없이 연락이 온다. "아니, 그 얘기 들었어요? 그건 우릴 무시하고 결정한 거 아닌가요?" 난 언제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 라며 죽자고 달려드는 이들.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마치 그들의 말이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전화를 하면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억울하고 분한 감정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들과 같은 무리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차례 감정의 널뛰기를 당할 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피해가 될 거라는 염려에 이르면 마치 어미인 내가 처신을 잘 못해서 그런 듯 자책감마저 들었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되면 어쩌나, 일어나지도 않은 두려움은 순식간에 날 잡아 삼킬 듯 밀려왔다.


하지만 전후 맥락을 따져보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그들의 분노 유발 시나리오는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의견이 오가는 중이어서 결정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한쪽 말만 듣고 이미 '난 억울하고 부당하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능력, 주변 사람에게까지 부정적인 기운을 퍼뜨리는 능력이 그들에겐 있었다. 특히 그들의 시기와 질투는 참으로 남달랐다.



그날도 그러했다. 몇몇 엄마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심란했다. 내가 그 상황을 어찌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어지러운 마음은 순식간에 화로 돌변했다. 이럴 때 분노의 화살은 죄 없는 아이들, 남편에게 향한다. 애먼 가족들에게 한껏 감정을 발산하고 나면 남는 건 속상함과 후회뿐. 아, 오늘은 그러지 말자. 눈을 질끈 감았다. 안방 문을 닫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었다.


도대체, 이 불편한 감정은 뭐람. 하얀 화면에 어지러운 마음이 두서없이 박혔다. 했던 말을 무한 반복해도, 오탈자, 맞춤법이 틀려도 상관없다. 미친 듯이, 한참을 자판이 부서져라 두드리고 나면 어느 순간 손가락이 절로 멈췄다. 앞, 뒤 문맥에 상관없이 마구 써 내려간 글은 말하고 있었다.

사실은 이거였구나, 난 이래서 화가 났구나. 

또박또박 써진 단어와 단어 사이엔 어느새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정처 없이 헤맨 내 감정이 자리했다. 아, 별 거 아니었네.


이후에도 관계 속에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들은 왕왕 일어났다. 그럴 땐 그들에게 오는 어떠한 연락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글을 썼다. 때론 종이에 휘갈겨 쓰기도 했고, 때론 스마트폰을 켜고 좁은 화면을 채워나가기도 했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길을 가련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난 내 감정에 붙들리지 않았고 그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며 날 지킬 수 있었다.


내 중심을 지키며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려 그렇게 글을 썼다. 누구에서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징징거리며 내 자아를 무너뜨리지 않아도 됐다. 내 생각, 감정, 사실을 철저히 분리하면 타인의 호들갑과 분노에 흔들리지 않았다. 설사 그들의 말에 요동친다고 해도 잠시 흔들리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뿌리까지 흔들려 정체성에 치명적인 상처까지 입지는 않았다. 잠시 욱했던 감정으로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난 그렇게 홀로 글을 쓰며 말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나와 내 아이를 지켜나갔다. 요란하지 않고,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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