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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pr 20. 2022

수습기자 시절 깨달은 글쓰기 비밀

글쓰기가 막막한 당신에게

10여 년 전, 막 기자가 돼 수습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수습기자를 두고 '견습見習 기자'라고도 하죠. 아직 사람 구실 못한다고 선배들이 '개 (犬)'을 붙여 '견습犬習'이라고 불렀더랬습니다.


수습 기간 중 법조팀에 배치됐을 때입니다. 검찰청, 법원, 대법원까지 널따란 서초동을 뛰어다닐 일은 많았지만 아직 '견습'인지라 기사다운 글을 쓰진 못했습니다. 바쁜 선배들 틈 사이에서 기삿거리 찾는 법, 사람 만나는 법, 멘트 따는 법, 기사 쓰는 법을 어깨너머로 배울 때였죠.


그리고 많은 시간을 기자실에 쌓인 신문을 읽으면서 보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나 본 팀으로 배치됐고, 제가 쓴 기사를 보고 데스크가 말했어요. "짜식, 기사 많이 늘었네!"


그럴 리가요. 기사 쓰는 법을 직접 조목조목 배우지도 않았는데 기사가 많이 좋아졌다니요.

그때 알았죠.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진리를요. 글 잘 쓰는 기술은 물론 있어요. 하지만 좋은 글을 곁에 두고 읽어 내려가는 것만큼 정공법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모방은 가장 좋은 기초 훈련이다. 글쓰기가 막막한 사람이라면 일단 필사부터 해보기를 추천한다. 좋은 글, 좋은 문장은 부지런히 따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문체를 흉내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 하기와 흉내 내기를 충분히 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만의 것이 탄생할 수 있다.
<문장수집생활_이유미>


지금도 책을 휙휙 읽다가 마음에 쏙 들어오는 문장을 발견하면 줄을 치고 베껴 적습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은 더 복잡 산란할 때 필사를 합니다.

특히 글이 잘 안 써질 때 오히려 느릿느릿 책을 읽고 한 문장이라도 따라 써 보려 애씁니다.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서 고무지우개 같고, 네모난 양철 도시락이 된 듯할 때, 책을 읽으면 사고의 전환이 이뤄지는 걸 느껴요. 생전 못 하던 생각이 퐁퐁 샘솟기도 하죠.


매일 아침 필사


책 읽기도 바쁜데 문장을 베껴쓰기까지 하라니 난감하신가요? 책 난이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책 30페이지 안팎을 읽는데 보통 30분 정도 걸립니다. 천천히 곱씹어 읽는다면 물론 더 걸리죠.

필사하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듭니다. 책을 읽고, 줄 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고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쓰니까요.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작가들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작업을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작가조차 자신의 생각이 글로 나오는 과정을 말로, 글로 정확히 풀어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니  말 다했죠.


작가들이 몇 달, 아니 몇 년에 걸쳐  지식과 성찰의 결과물이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박히는 과정, 그게 바로 필사예요. 그래서 전 이 과정을 책 속에서 글쓰기 비밀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비밀을 발견하는 게 어디 쉽던가요. 그러니 읽고 베껴 쓰고 정리하는 게 빨리 될 리 없지요. 짧은 시간, 후딱 책을 읽고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필사하는 과정은 답답하고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읽고 베끼고 쓰는 <비밀책방>


글을 잘 쓰고 싶으세요? 기가 막힌 책을 쓰고 싶으신가요? 글발이 안 오르고 그놈의 영감 따윈 집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필사를 적극 권합니다.

가능하다면, 필사를 놀이처럼, 놀며 놀며 하기를 권해요. 숙제라 여기기보다 쉬엄쉬엄, 여유를 갖고 읽고, 한 문장 베껴쓰고, 가만히 멍 때리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거리는 거죠. 그때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어요. 완전 신납니다.


필사하다 글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을 고르는 게 처음부터 쉽진 않을 거예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아 너무 좋다!'라는 마음이 들면 그때 필사를 시작해도 되고요. 책의 일부를 조금씩 띄엄띄엄해도 좋습니다.  


책을 읽다가 나 자신의 글쓰기를 심각하게 돌아보게 만든 책을 만나기도 합니다.읽으면 읽을수록 하고픈 말을 그럴듯하게 쓰고 싶은 욕심이 자꾸 솟아나서 평소 쓰던 방식을 바꿔보려 애쓰게 되기도 하죠. 이리저리 달리 생각해보고 둘러둘러 돌아가 보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써보기도 하고. 글 쓰는 시선에 대한 신선한 고민과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것도 읽고 베껴쓰는 일이 주는 미덕입니다.


책은 글이 아니라 메모에서 나온다는 말을 기억해요.

책 필사하고 메모하는 일이 좋은 글을 쓰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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