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무 예쁘길래
이 브런치를 아루라는 이름을 가진 토끼 이야기로
시작했었는데, 그때가 언제더라.
결혼하기 한참 전, 지금의 남편이 아닌(?ㅋㅋㅋ)
사람과의 이별 후 마음이 매우 아팠던 날들을 보내던 때.. 그땐 어찌나 창작의 샘이 솟구치던지.
그런 걸 그리던 내가
이제는.. 아무리 쥐어 짜내도 생각이라는 게 없는 탓에
(애를 낳은 후에는 어제 일도 기억해 내는 게 용하다.)
그래도 뭔가는 그려 보고 싶어서
요즘 사부작사부작.. 앨범을 뒤져가며 우리 가족을 그려본다.
서현이를 데리고 갔던 작년 첫 제주 여행.
오빠는 4일 동안 알바생을 대타로 쓰고 가야 했던..
우리에겐 고민이 많이 필요했던 여행이다.
여차저차 시기 맞출 겸 결혼기념일 가까운 날짜에 갔었지..
신나는 마음으로 아직 채 쌀쌀 해지지도 않았는데
제주도에서 입힐 서현이 가을 옷을 마구 샀다.
3박 4일 가는데 서현이 신발 3켤레, 서현이 옷 약 10벌 정도.. 피팅 촬영 여행이 절대 아니다ㅋㅋㅋㅋ
그리고.. 오빠와 나 옷 2벌씩ㅋㅋㅋㅋㅋㅋㅋㅋ빈부격차가 난무하는 우리의 캐리어랄까..?
제주에 도착했다.
출발할 때부터 친정 엄마의 아쉬운 소리가 가득했다.
"삼백구 년 만에 여행 가는 데 비가 내도록 오드라.. 날도 참 잘 잡았다 어이구"
나도 똑같은 생각이었고 너무 짜증이 났지만
"비 와도 제주는 제주다. 운치 있고 더 좋지 머"
사실 일기 예보야 늘 바뀌고 제주 날씨는 변덕이 심하니
호기롭게 말했는데 진짜 여행 내내 비가 올 줄은 몰랐다.
숙소도 고심해서 정하고 의상도, 코스도 다 짜뒀는데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내가 하루 종일 검색 한 건
제주 실내 아이랑, 제주 비 오는 날 이 다였다.
하루 일정을 끝내고 들어오면 우리 가족은
축축 해져있었다. 습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좀 전에 다이소에 들러서 사 온 클레이를 조물조물 만지며 찝찝한 것도 잊은 채 혼자 놀고 있는
서현이가 너무 예뻤다.
통창에 푸릇푸릇 한 배경이 있는 숙소를 잡았는데
초록을 느낄 순 없었지만
비가 온 탓에 젖은 바닥에 비치는 조명 불빛과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그 앞에 앉아있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꼬마.
만족스러운 제주 여행 중의 한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