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조직은 구성원에게 주도성을 요구한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필요한 사람을 모아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태도다. 한마디로 밭주인처럼 일하라는 요구다. 그런데 실제 조직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계속 확인을 구하고, 누군가는 지시가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누군가는 판단보다 실행에 강점을 보인다. 이 모습은 수동성이나 오너십 부족으로 해석되지만, 핵심은 다르다.
사람은 원래 그런 쪽에 더 가깝다. 직장인은 소작농에서 진화했다.
이 말은 비하가 아니다. 인간이 익숙해온 노동 방식과 심리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맞는 일인지 확인받고 싶어 한다. 동시에 불확실한 새 일을 만드는 것보다, 누군가 정리해준 일을 정확하게 해내는 쪽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새로운 일을 정의하는 일에는 정보 부족과 책임 부담이 붙고, 실패 비용도 크다. 반면 기준이 정해진 일은 무엇을 잘한 것으로 볼지 명확하고, 그래서 움직이기 쉽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일해왔다. 쌀 심으라면 쌀 심고, 보리 심으라면 보리 심는 구조에서 중요한 역량은 창안이 아니라 정확성, 성실함, 반복 수행 능력이었다.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좋은 노동자였고, 그건 당시 환경에서 가장 합리적인 생존 방식이었다. 지금도 많은 직장인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그래서 조직이 갑자기 모두에게 문제 정의, 우선순위 판단, 리스크 감수, 협업 조정까지 한 번에 요구하면, 상당수의 사람은 익숙한 방식과 다른 환경 앞에서 주저한다.
문제는 조직의 요구가 모순적이라는 점이다. 조직은 구성원에게 주도성을 요구하면서, 주도성을 발휘할 조건은 주지 않는다. 의사결정 권한은 불분명하고, 우선순위 기준은 흐릿하고, 실패에 대한 보호 장치는 약한데 결과 책임만 넓게 요구한다. 그러면 사람은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판단 전 확인을 받으려 하고, 이미 정의된 일부터 처리하려 하고, 책임이 자신에게 단독으로 귀속되지 않게 움직인다. 이걸 오너십 부족이라고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권한과 책임이 어긋난 환경에서 나타나는 예측 가능한 반응이다.
여기서 리더의 역할이 갈린다. 리더는 사람을 독려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구성원이 필요로 하는 것은 거창한 동기부여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어디까지는 스스로 판단해도 되는지,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지, 무엇을 잘한 것으로 평가하는지, 실패했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회고하는지다. 이 기준이 명확하면 사람은 빠르게 움직인다. 이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일하는 법부터 찾는다.
회사에서 먼저 움직이고, 시키지 않아도 일을 만들고, 필요하면 위에 올라가 직접 관철시키는 사람이 돋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사람은 귀하다. 조직에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그 사람을 평균값으로 놓는 순간 조직은 대부분의 구성원을 계속 부족한 사람으로 만든다. 왜 저 사람처럼 못 하느냐는 질문은 쉽다. 좋은 질문은 아니다. 보통의 사람이 어느 정도의 주도성을 안정적으로 발휘하려면 무엇을 명확히 해야 하느냐가 좋은 질문이다. 조직은 영웅 몇 명으로 유지되는 곳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성과를 내는 시스템이다.
직장인들이 보이는 확인 요청과 의사결정 지연은 최종확인이 아니다. 책임을 분산하거나 넘기기 위한 행동이다. 일이 잘되면 함께 한 일이고, 일이 잘못되면 “확인받고 진행한 일”이 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겉으로는 협업과 정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 책임을 혼자 지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이 행동을 개인 태도 문제로만 설명하면 조직을 못 고친다. 권한은 작고 책임은 넓거나, 판단 기준은 사전에 없는데 사후적으로 결과 책임만 크게 묻는 조직에서는 누구나 책임부터 나눈다. “이 방향 맞을까요?”, “한 번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은 소극성의 표현이 아니다. 책임의 귀속을 미리 조정하는 언어다. 애매한 조직일수록 일의 논리보다 책임의 위치를 먼저 정하려는 대화가 많아진다.
직장인은 소작농에서 진화했다. 이 문장은 냉소가 아니라 전제다. 사람을 이상화하지 않고 기본값을 인정하는 문장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확인받고 싶어 하고, 기준이 필요하고, 책임이 두렵다. 동시에 의미 있는 일은 잘해내고 싶어 한다. 이 전제를 인정하면 조직을 보는 방식이 바뀐다. 왜 더 주도적으로 하지 않느냐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무엇을 먼저 명확히 해야 하는지 본다.
좋은 조직은 구성원을 밭주인처럼 굴리지 않는다. 밭주인처럼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무엇을 심을지, 누가 결정할지, 어디까지 각자가 판단할지, 어떤 기준으로 잘했다고 말할지를 분명히 만든다. 그때 사람은 소작농의 습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구조를 바꾸는 편이 빠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도성은 성격이 아니라 설계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