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걸 왜 쓰고 있냐면요
뭐든 신뢰할만한 사람이 글을 써야 읽힌다는데 제가 그 정도의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만큼 나이가 많은 것도, 누군가에게 사업의 존망을 책임지겠다 으스댈 만큼 실력을 증명할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걸 읽고 봐온 사람으로서, 가장 실무의 중심에 있는 연차로써, 또 많은 브랜드의 마케팅 타깃으로 살아가면서 어렴풋하게 느껴온 정보를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왕왕 사람들이 기술적으로든 아이디어적으로든 물어볼 때 대답하던 것들을 모아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다 보면 어디부터 어디까지 아는지, 어디가 부족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이 쓰고 단 가르침을 많이 주실 것 같아서요. 미루고 미루다 브런치북이라는 강제성과 함께 정리를 시작합니다.
저는 스물여섯, 20대의 절반을 마케팅과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6년 차입니다. 다른 사람이 커리어를 시작할 때 왜 벌써 6년 차냐면 (당연한 소리지만) 일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20대 초반부터 중반, 후반까지 많은 브랜드들이 잡아야 하는 타깃이자 또 그들을 잡는 마케터로 일했습니다. 디지털 대행사에서 3년을 일했고, 종합대행사에서 또 3년을 일했습니다. 지금은 아주 갓 시작한 작은 브랜드의 인하우스 마케터입니다.
디지털대행사에서의 3년.
지금 생각하면 커리어의 첫 시작이 꽤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도 안정성도 있는 대행사였고, (많은 사람들은 단점이라고 칭했지만) 매출만 내면 AE의 주도성을 꽤 확보해 주는 회사였기 때문입니다. 전 매체를 직접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매체의 구조도 금방 배웠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어린 나이에 본부 팀장의 부사수 역할을 하면서 팀장 퇴사 후 빅 클라이언트를 많이 만나보기도 했고요. 단기간에 월 10만 원 예산 광고주부터 월 5천만 원 예산 광고주까지 폭넓게 경험해 볼 수 있었죠. 그리고 오히려 아는 것 없이 대행사에 있다 보니 클라이언트와 훨씬 더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 타깃이었으니 타깃입장에서 말하기도 용이했고요. 나이가 어렸고 학교에서 컴퓨터를 워낙 잘 다뤘어서 트래킹 툴도 금방 배웠습니다. 주로 DB마케팅을 했고, 검색광고나 메타, 구글까지도 폭넓게 운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당시에는 1N개의 클라이언트의 전 매체를 직접 운영하고, 보고도 직접 하고, 미팅도 직접 갔기 때문에 정말 매일 일에 치여 살았는데요. 나름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일을 어린 나이에 시작했다는 불안도 일로써 해소할 수 있었고, 오히려 높아지는 실적이나 성과를 보면서 (비록 그게 금전적인 대가로 돌아오진 않았습니다만) 이 일이 나이를 타지 않는다는 자신을 조금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됩니다.
캠페인이 뭐고, 기획이 뭐고, 카피고 아트가 뭐가 어떻고... 처음으로 [광고]의 수많은 직군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앞선 회사에서 100% 퍼포먼스만 진행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오는 마케팅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는데, 브랜드의 철학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 브랜딩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던 다양한 브랜드의 행보를 지켜보게 됩니다.
첫 회사를 퇴사하고 3개월 정도 쉬었는데 작은 종합대행사의 대표님께 연락을 받게 됩니다. 그때 당시 종합대행사는 TVC나 옥외를 넘어 디지털까지 해야만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캠페인 기준으로 제작비보다는 매체비가 남는 게 많긴 합니다) 저는 그때 제가 감성과 장기적인 가치를 잡는 브랜딩과 숫자를 보고 단기적 매출을 내는 퍼포먼스 중 어디에 적성을 두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디지털매체를 전체적으로 직접 운영할 수 있었고, 클라이언트 피드백을 할 수 있었으며, 트래킹 툴까지 설치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이직을 제안받게 됩니다.
여기서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크리에이티브, 기획, 아이데이션 등 종합대행사의 업무 플로우를 배우게 됩니다. 브랜딩을 하는 클라이언트였으니 메가 브랜드들도 많이 만나보게 되고, 첫 회사에서는 혼자 잘 해내는 걸 목표로 했다면 협업해서 결과물을 내는 방식을 배우기도 합니다. 실제로 회사의 방향성을 따라 브랜드를 기획해보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쪽에 센스가 없었으니 이때부터는 온갖 전시, 영화, 책, 브랜딩 팝업, 캠페인 등을 섭렵하고 레퍼런스를 미친 듯이 보게 됩니다. 마케팅의 세계가 한정 없다는 걸 깨닫고요.
가치에 눈을 뜬 건 아마 이때였을 것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스스로를 '마케터'라고 칭합니다.
마케터의 구분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입니다. 퍼포먼스, 콘텐츠, CRM, 그로스... 물론 규모가 크다면 각자 자기가 잘하는 걸 찾아서 하나만 맡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특정 마케터로 정의하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마케팅이란 자고로 매출도, 브랜딩도, SNS도 아니고 회사의 목표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장/단기적으로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지키고자 하는 가치, 가고자 하는 걸음의 방향성을 지켜내고 설득하는 것이 마케터라고 생각합니다. 제한을 두지 않고 일하려고 작은 규모의 인하우스로 들어왔습니다. 광고세팅부터 SNS 운영, 글, 그림, 심지어 제품사진 촬영까지도 하면서요. 직무를 구분 짓지 않고 'MARKET'ing에 필요한 일을 다 해보고 싶어서요. 대행사에서 인하우스로 들어온 것 또한 이 가치를 위함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지고 제 생각도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마케팅이나 기획에 관한 책은 무조건 읽어봐야 하고, 팝업이든 캠페인은 계속 찾아봐야 하고, 퍼포먼스 소재 중 재밌는 것들을 캡처한 게 한가득입니다.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날도, 그러지 못한 날도 있고 잘했다고 뿌듯한 날도, 우울에 점철되어 퇴근할 때도 있는 그저 그런 대리연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즈음 기록해 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이 다양한 선배님들과 후배님들의 의견이 모이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브랜드는 마치 생명 같거든요. 어쩌면 인생 같고요. 태어나고 소멸하는 사이에 겪는 수많은 굴곡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요. 브랜드는 숨을 쉬지만 그 숨이 거칠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늘 가쁘고 벅차게 몰아쉬는 숨들 사이에 살아가는 우리는 마케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저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그 호흡들 가운데에서 열심히 일하며 배운 것들을 써 내려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