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큰 고양이를 위한 세레나데

마음에 굳은살이 생겨 버린 당신을 위한 이야기

by 발가락꽃


고양이는 외로움을 안타는 동물이라고, 혼자서도 잘 지낸다고 모두 그렇기 이야기한다. 우린 개를 키우기 전에 같이 있어 줄 시간부터 고려하지만 고양이를 키울 때는 독립적인 성격을 고려해 키우는 경우가 많다.




사실 고양이는 개만큼 표현하지 않고, 문제 행동을 하지 않아 그렇지 외로움을 타고 겁도 많다. 단지 티가 안 날 뿐이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다. 하지만 영역 안에서 친구를 만들고 친구와 교감하기도 하며 친구의 고통에 반응한다. 개처럼 서열이 있고 집단생활을 하는 수직의 관계는 아니지만 그들 나름의 수평적이고도 나른한 프랜드 쉽이 있다. 고양이가 영역동물이라는 건 영역 안에서 편하게 돌아다닌다는 것이지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하고 고립된 살아간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의 분리불안이나 스트레스, 외로움에 관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왜냐하면 고양이들은 마음의 병이 먼저 생기고 깊게 생긴다. 밖으로 표출하기보단 혼자 가지고 있다.




고양이의 문제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돌보는 사람이 잘 관찰해야 한다. 자세히, 세심하게.

그들이 하는 문제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작디작은 것이라 둔감한 사람들에게는 문제조차 되지 않는 행동이다. 내 삶의 한켠을 잠시 닫고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문제 행동들.




가끔은 주변에 고양이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고통을 잘 참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고통에 최적화된 사람들은 고통에 무감각해져 고통을 이야기하지도 않으며, 이런 감정들을 표출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일종의 마음의 굳은살이 생겨진 것처럼.




"아 ㅇㅇ는 외로움을 많이 안타", "혼자서도 잘 있네", "ㅇㅇ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야."


하지만 과연 마음이 강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음의 고통을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이 강한 사람이 돼버린다.




옛말에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는 속담처럼 사람들은 고통을 표현하는 사람의 아픔은 잘 돌아본다. 당장 피해가 될만한 행동들을 보면 걱정한다. 당장 눈에 보이니까.




하지만 표현에 서툴고 고통의 통감에 둔한 사람들은 심연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또 가끔은 이 게 고통스러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린 그들의 아픔에 관해서 둔감하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분명 고통스러울 상황인데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친다. 그들의 고통을 세밀하게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나 하나도 온전히 살기 힘든 세계에서 다른 이를 자세히 본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니까.




이들은 고양이처럼 나름 표현하고 있지만 그들의 심연의 누구도 눈치 체지 못한다. 고양이처럼 손이 많이 안 가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마음의 현미경으로 바라보면 그들의 마음이 까매질대로 까매졌다는 걸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모두가 동일한 아픔에 동일한 통증을 느끼진 않듯이 동일한 통증을 동일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고양이처럼 말 없는 마음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표현에 서툴다고 해서 못 느끼는 것도 아니고, 말을 안 한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들을 잃기 전에 보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하지 않아도 주변을 돌아보는 정도의 여유를 가지자.


조용히 버티는 마음에게 바치는 작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