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착한 사람을 더 힘들게 할까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말에 당해 속으로 열받고, 밤에 이불킥을 하는 순간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상대를 탓하지만, 또 누군가는 스스로의 임기응변을 탓한다.
“왜 그때 바로 받아치지 못했지?”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이런 후회는 사실 공격을 예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의 마음은 누군가와 함께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뿐, 대화 속에서 날아올 펀치를 상상하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선량함은 늘 쉽게 다친다.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다.
사람들은 내게 임기응변이 좋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습관처럼 몸에 밴 경계심 덕분이다. 누군가의 말속에서 혹시라도 불쑥 튀어나올 날카로운 표현을 대비해, 보이지 않는 가드를 올리고 살아간다.
권투 선수가 어디서 주먹이 날아올지 몰라도 두 손을 올린 채 링 위에 서는 것처럼, 나 역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대화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가드를 올리기보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분위기를 화합 쪽으로 이끌려한다. 대화의 목적이 방어가 아니라 이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불쑥 날아드는 쨉은 더 크게 다가온다. 맞대응은커녕 속으로 삭이다가 결국 자기 탓을 하며 괴로워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묻게 된다.
가드를 올리지 않고 대화에 임한 사람이 잘못일까?
아니면 이유도 없이 펀치를 날린 사람이 잘못일까?
착한 사람들이 자기 임기응변 부족을 탓하며 괴로워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사실 그들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 싸움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타인을 믿고, 함께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세상은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야 안전해지고 따뜻해진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게 싫다. 그리고 이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뀌어야 할 건 그들이 아니라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