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함과 결핍, 그사이 인간에 대해.

유용함과 결핍을 오가며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

by 발가락꽃

내가 무용함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용함과 지금의 힘듦을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의 쓸모없음'은 대부분 무용함이 아니라 결핍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용할 수 없다.

사람은 사회 안에서 어떤 형태로든 유용함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우리는 '돈을 벌지 않는 상태'를 곧바로 무용함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소득이 없다고 해서 사회적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돌봄을 수행하고, 누군가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준비하며 살아간다.



특히 오랫동안 '엄마'였던 사람들이 아이의 손길이 덜 필요해지는 시점에, 자신의 무용함을 말하기 시작한다. 쓸모가 없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용함이 아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왔고, 쓸모 있었던 사람들이다. 다만 그 쓸모가 '밥값'으로 환산되지 않았을 뿐이다. 어느 순간 나를 필요로 하던 대상이 사라지면서 결핍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핍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다시 어떤 방식으로든 무언가를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유용함과 무용함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유용함과 결핍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오늘은 무용함이 아니라 결핍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람들은 결핍을 나쁜 것으로 말하지만, 결핍은 우리에게 의지를 준다. 결핍이란 순간적 단절을 의미한다. 늘 부족함 없이 당연하게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경험이다. 우리의 유용성이 잠시 중단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은 분명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끊어짐은, 앞으로 다가올 더 긴 고통을 견디게 하는 진통제가 되기도 한다.

풍요 속에서는 농사가 의미를 잃는다. 손 닿을 곳에 언제든 먹을 것이 있고, 따뜻한 집이 보장되어 있다면 굳이 씨를 뿌릴 이유도, 여름의 뜨거운 햇빛 속에서 견뎌야 하는 고통도 모두 무의미해진다. 인내는 불필요한 행위가 되고, 참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결핍을 겪은 사람은 다르다. 겨울을 지나 배를 곯아본 사람만이 봄에 거머리와 싸우고, 여름의 태양을 이기며, 마침내 수확에 도달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원하는 일이 '기회'라는 이름으로 왔을 때, 결핍을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붙잡을 강한 욕구와 힘을 이미 가지고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유용함을 회복했을 때 그 안의 고됨을 스스로 보듬을 수 있다. 차가운 겨울의 결핍을 견뎌본 사람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이할 체력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결핍의 시간은 우리에게 의지를 주고, 버티게 하며, 결국 이루게 한다.



겨울의 결핍이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 여름의 태양을 견디게 하며, 마침내 가을의 결실로 이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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