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와 창조성 사이에서 욕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어쩌면 "욕망"이란 단어만큼 심하게 왜곡된 단어도 없을 것 같다.
욕망은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가지는 첫 번째 감정이다. 우리가 자아를 인식하기 전, 우리는 이미 욕망을 느끼고 표출한다. 배가 고프다,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다 등 말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세 가지로 나눈다.
1) 원초아(Id: 이드)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본능적 존재로 즉각적인 만족을 원한다. 배고픔, 성적 충동, 공격성 같은 원초적 욕구의 덩어리이다. 쾌락 원칙으로 움직이며 현실이나 도덕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2) 자아(Ego: 에고) 성장하면서 발달하는 자아. 원초아가 원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문제없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려 노력한다. 현실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며 논리적 사고, 계획, 판단 등을 담당한다. 욕구(원초아)와 규범(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재자이다.
3) 초자아(Superego: 슈퍼에고) 부모, 사회, 문화가 요구하는 도덕 기준이 내면화된 것이며,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를 제공한다. 지나치게 강하면 죄책감과 억압이 커질 수 있다.
1차적 욕망을 안고 태어나 자아가 생기면 본격적으로 주변 사람들은 아이의 내면의 타인인 초자아 형성을 "훈육"이란 이름으로 시작한다.
그렇기에 생각이란 것이 생기면서 사회나 부모님이 요구한 것처럼 우리는 계속 욕망을 통제하려 한다. 어쩌면 욕망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유아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가공되지 못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모습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욕망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
앙리 베르그송은 생명의 도약(엘랑 비탈: élan vital)이란 개념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생명이 단순한 물리·화학적 법칙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생명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창조적 힘이다. 이 힘은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갈지 예측할 수 없는 고유의 힘이라고 한다.
나는 이 개념이 욕망과 많이 닮아 있다고 본다.
프로이트의 이드 역시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로 무언 가를 계속 요구하는 것이며, 베르그송의 생명의 도약 역시 우리가 내부에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생명의 도약, 즉 계속 무언가를 해 나감이다.
그리고 이 두 개념과 가장 닮아 있는 말이 욕망이다. 욕망은 개인의 삶에 계속하여 무언가를 갈구한다. 모자라다고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원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액셀러레이터처럼 앞으로 나가는 힘이라는 거다.
원래 타고난 것이기에 욕망은 어느 정도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남도 원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대부분 남도 싫어한다. 그러기에 사회에서 마찰 없이 매끄럽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더 욕망을 통제하기도 한다.
우리는 매 순간 이 욕망의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을 제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욕망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원치 않는다면 그 삶은 재미가 없다. 그리고 욕망을 너무 억눌러 버린다면, 이 통제되고 절제된 욕망은 다른 곳으로 창의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욕망이 가지는 힘 때문이다. 이 힘은 나아가려는 성질이 강하기에 누르면 옆으로 창조적으로 자라난다.
가끔 우리는 이 욕망이라는 것이 너무 아이스럽고 유치해 보이거나 탐욕스러워 보여, 당연히 드어낼 수 있는 작은 부분에서 조차 욕망을 통제하려 든다. 하지만 욕망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면 솔직히 드러내는 편이 건전하다. 그래야 이 힘이 앞으로 나아가고, 억누르는 부분에서 왜곡된 형태가 아닌 건강한 창조성을 가지고 삶을 활력 있게 만들어 준다.
욕망은 어느 정도 형태는 비슷하지만, 세세한 모습은 제각각이다. 특히나 인간관계에서 내 욕망이 남과 같지 않을 수 있기에 내 욕망을 솔직히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건 무례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욕망은 삶을 이끄는 말 같은 존재다. 이 말은 성격이 난폭하여 잘 조절하지 않으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하지만 욕망이 없다면 살아가는 재미가 없고 삶의 원동력도 떨어진다. 어쩌면 욕망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가장 증명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삶의 의미를 잃고 삶을 포기해 버린 사람들은 어떤 욕망도 나타내지 않는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것, 무언가를 누리고 싶다는 것, 모두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하는 욕망들이다.
내 삶을 끌어주는 말에게 당근과 채찍은 필수다. 남의 시선 때문에 욕망에게 채찍질만 하지는 말자.
욕망을 나쁘다고만 하지 말자. 욕망은 당연함을 인정하고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설계해야 한다. 당근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