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해가 뜬다’는 확신의 근원

당연함은 어떻게 아이의 뿌리가 되는가

by 발가락꽃



내일 해가 뜰 확률을 구해야 할까? 내일 해가 뜬다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확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해가 오늘 질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해가 내일 다시 뜰 거란 확신을 한다.



무더운 여름날이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온다고 기다리고 견딘다. 추운 겨울이 오면 봄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늘 출근한 아빠가 돌아올 거란 믿음, 엄마가 오늘도 맛있는 밥을 줄 거란 믿음. 계속된 반복이 만들어내는 믿음이다.



오늘의 해가 지고, 내일의 해는 다시 뜨고, 이 순환이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집은 내가 돌아갈 곳이고, 가족은 함께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계속 축적이 되었고, 한 번도 빗겨나간 적이 없다.



평소엔 밥 한술 더 뜨라 전쟁인 우리 집 아기가 웬일로 어제 저녁밥을 다 비우고 나에게 밥을 더 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당연히 엄마는 영원히 존재하고 계속 자신에게 밥을 줄 거라 생각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처럼, 오늘 아이에게 주어진 밥은 다 먹는다. 모자라면 엄마에게 밥을 더 먹고 싶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것은 태어났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기억이 만든 신뢰이며, 반복의 믿음이다.



2014년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살인사건이 다 그렇듯 잔인하고 무서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이 사건 속 아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아이는 그 당시 고무통과 함께 발견됐다. 아이의 나이는 8살 정도. 집안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어질러진, 쓰레기 투성이 집이었고, 아이는 홀로 방치되어 있었다.



2층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는 주민의 신고에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이 문을 따고 들어가 사건 현장을 확인하고 홀로 있던 아이는 당연히 보호기관으로 가게 된다. 그때 아이의 상태는 영양실조. 아이 엄마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혼자 두고 집에 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보호기관에 이관된 아이는 거기서 나오는 음식들을 다 먹지 않고 소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양실조 상태였는데도 계속 이런 행동을 하는 것.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인 방치로 인해, 엄마가 다음 음식을 언제 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반복적 믿음이 없는 아이가 한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연히 엄마는 항상 거기 있는 존재, 내게 먹을 것을 주는 존재라는 믿음이 깨져버린 것이다. 마치 내일 태양이 뜨지 않을 확률이 생긴 것 같은 공포를 주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하는 행동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약속들이 존재한다. 파란불이 되었을 때 길을 건너는 것 역시 차들은 빨간불에 멈출 거라는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남에 대한 믿음, 그리고 환경, 자연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때까지 지켜졌던 약속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약속들을 믿고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의 해가 뜨지 않을 확률은 없는 것처럼 사는 것, 겨울은 견디게 만드는 것은 봄이 항상 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밥을 비웠을 때 다시 채워줄 부모가 있는 것 역시도 아이의 세계에서는 이런 당연한 믿음의 종류 중 하나가 된다.



수많은 믿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믿음이 존재하지도 모르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약 이런 당연한 믿음들에 한 번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세계는 혼란해진다.



아이의 세계에 내일의 해가 다시 뜨는 것을 의심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이 세계가 단단해야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사춘기에 그 단단한 세계를 혼자 깰 힘이 생긴다.



달걀의 껍질이 단단하지 못하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지 못한다. 자신의 다른 부분을 커다랗게 키우기보다는 언제 균열이 올지 모르는 껍질만 걱정하게 된다. 물론 다 성장한 이후, 껍질을 뚫고 나오는 건 다른 문제다. 일단은 건강히 자라야 뭐든 가능하다. 건강히 자라는 토양, 그게 그 아이의 세계이고 세계의 전부인 부모의 몫이다.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만이 자신의 껍질을 스스로 균열을 내고 밖으로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