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포네가 알려준 ‘먹음’의 철학

먹음에 숨어 있는 믿음의 구조

by 발가락꽃

먹음의 의미


어렸을 때 봤던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야기.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는 석류 몇 알 때문에 지상으로 가지 못하고 한 계절을 오롯이 지하세계에서 하데스와 지내야 한다. 어린 내 눈에 이 아름답고 섬뜩한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커다란 의문이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먹는다'는 행위였다.



석류 몇 알에 왜 지하세계에 있어야 할까? 먹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기에 한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것일까? 우리는 먹음을 경계해야 하나? 사실 난 그 이야기로 커다란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나이가 들고,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일하면서 어느 정도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음식은 문화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 몸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생각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홍삼. 처음엔 뭣도 모르고 가장 비싸고 좋은 걸 선물하기 위해서 몇 번 줬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한 번 먹고 끝나는 것도 아닌, 계속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쓴 무언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외국인들에게 좋음을 아무리 설명해도, 대부분은 '나를 믿고' 입에 넣는 것이지 좋다고 해서 먹는 게 아니었다.



비즈니스에서도 그렇다. 외국인들이 아는 "한식"류는 그래도 쉽게 비즈니스가 성사되지만 기호식품은 성사가 어렵다. 예를 들면 한 번은 전자담배 비즈니스를 도왔었는데 그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액상들이었다.



바이어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다. "기계는 문제없다. 하지만 액상은 문제가 다르다.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수입이 된다고 해도 소비가 안 된다. 소비자들은 유럽에서 생산된 것이 아닌 액상 제품을 원치 않는다."



이처럼 기계, 기술, 콘텐츠 등의 비즈니스는 이런 종류의 정신적 믿음 문제를 동반하지 않는다. 가장 보수적이고 늦게 바뀌는 믿음. 그것이 "먹음"에 관한 믿음처럼 보인다.



문화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되고 궁금해질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입을 열었고 소비하였다.



2008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했고, 나는 한식의 모든 여정을 눈으로 보게 된다.

한식 진흥 같은 경우도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흥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정말 진흥이 된 것은 K-콘텐츠가 뜨면서부터다. K-콘텐츠를 보고 문화를 습득하고,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들이 먹는 음식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K-콘텐츠가 부흥하자 여기저기 한식당이 생기고 한식 간식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식 카페도 생겨났고 줄을 설 만큼 불티나게 팔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먹는다는 것은 곧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페르세포네는 지하의 문화를 이해했고, 그리워질 만큼 그 문화에 젖어버린 것.



아이러니하게도 유학이나 이민 때 항상 고국을 그리워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 머물던 나라가 그리워진다. 살았던 나라 음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여행으로 다시 방문하기도 한다.



문화에 젖어들었고, 그 사람들을 이해해 버렸고, 그 안에 살던 내 모습이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것.

그제야 나는 어린 시절의 공포를 이해했다. 페르세포네를 붙잡은 것은 석류가 아니라, 그곳의 문화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