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유의 온도

어둠 속에서 태어나는 빛에 대하여

by 발가락꽃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시계가 한 시간 되돌아가며 오전 2시가 두 번의 새벽을 맞이했다. 본격적으로 겨울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추위와 함께 평가와 성찰의 계절을 맞이한다.



나에겐 항상 사색의 계절이 되었던 겨울. 난 겨울이 싫지 않았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 그해 수확한 것을 나눠 먹고 모닥불 앞에서 사색을 즐기던 겨울.



그런 겨울이 죽음의 계절로 바뀐 해가 있었다.



모든 한 해의 농사가 망하고 저장고에 남은 곡식으로 연명해야 했던 시간들. 그 겨울은 나에게 큰 상처로 남아 더 성실한 봄, 여름, 가을을 가져다줬다. 준비되지 않은 겨울의 혹독함을 알기에.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딸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와 함께 저승에 머무는 동안, 농사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슬픔에 잠겨 일을 멈춘다. 고대인들의 겨울이었다.



결실을 품던 땅은 생산을 멈추고 휴식으로 들어가고, 땅의 휴식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동안의 결과를 가지고 겨울을 보낸다.



그래서 겨울은 노년에 비교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 모든 결실을 이룬 노년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내 인생의 결과물을 가지고 견뎌야 하는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겨울의 또 다른 이름을 평가, 혹은 슬픔이라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준비된 겨울은 다르다.



준비된 겨울은 봄, 여름, 가을의 노고를 감사하며 길어진 어둠과 함께 사색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밝음은 좋다. 건강하다. 하지만 분명 어둠은 존재해야 한다. 그 어둠 안에서 많은 것이 태동한다.



다시 다가올 삶의 시간을 준비하기도 하고, 어둠에 감춰진 것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바라보게도 한다.

어둠의 시간이 없었다면 밝음이라는 대비도 없었겠지. 불편함으로 세상은 변화하듯, 휴식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창조의 순간이 되듯. 사색의 순간은 사람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겨울은 존재해야 한다. 밝지도 따스하지도 않고 누군가는 원치 않는 쉼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 계절이 주는 시련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한번 단절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봄에 대한 설렘과 기쁨을 주기도 한다.




처음 유학 와서 가장 놀랐던 건, 유럽 겨울의 해 뜨는 시간이 이렇게 짧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다.

"유럽에 철학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겨울 때문일 거야."



러시아의 문학, 독일의 철학…

어쩌면 그 모든 깊은 사유는 이 길고 긴 밤 속에서 고뇌와 진통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산물은 아닐까?



겨울의 장점이자 단점은 밤이 낮보다 길다는 것. 그 기나긴 밤 동안, 수많은 목표들로 바쁜 삶 때문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사색과 여운을 다시 꺼내보려 한다.



겨울의 진통이 클수록 다가오는 봄은 더욱 새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사색을 두려워하지 말자.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자. 당신의 성장이 동반할 테니까.

기억해야 하는 건, 겨울도 낮의 따스함이 있다는 것. 그러기에 짧은 낮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