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운명일까, 형벌일까

시지프가 말해주는 열정의 얼굴

by 발가락꽃



열정(Passion)의 어원은 라틴어 'pati' - 고통받다, 견디다.

원래 열정이란 '수난'을 의미했다. 능동이 아닌 수동, 선택이 아닌 운명적인 수난이다.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 나를 고통으로 끌고 가면서도 갈망하는 것, 그것이 열망하고 멈출 수 없는 것.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더 고통스러운 것이 열정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자전거 타는 것에 진심이다. 단순한 운동의 의미를 벗어나 더 그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많은 장비를 사기도 하고 끝없이 달리기도 한다. 남이 보기엔 왜 힘들게 저렇게 하냐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는 사람도 '항상' 즐겁지는 않다. 어느 순간엔 힘에 부치기도 하고 내가 왜 이걸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린다. 창조의 고통으로 몸부림치기도 하고 하다 보면 손가락이 저릴 만큼 붓질을 하기도 한다. 누구는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숙명인 것처럼 열정의 불꽃에 같이 불타버리기도 한다. 가끔은 열정에 눈이 멀어 몸이 망가지는지도, 열정에 타들어 가는지도 모르게 하는 열정이라는 진통제.



시지프 신화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시지프는 굴러 떨어질 돌을 매일매일 들어 올린다. 산으로 산으로 들어 올리는 시지프는 매일 같이 그 일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돌을 굴리고 다시 올리고, 떨어지는 돌을 보면서 실망한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의 반복되는 무용한 노동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비유하며 '부조리'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이 신화를 바라본다. 어쩌면 시지프가 저주받은 것은 매일 해야 하는 반복적인 행위의 '노동'이 아니라 '열정'이 아닐까? 돌을 결국 산에 올려놓겠다는 열정. 남들이 보기엔 어리석어 보이고 의미 없지만 나는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고 그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 하지만 할 땐 너무 고통스러운 것.



시지프의 머리에도 하루 종일 가해지는 노동의 육체적 고통, 하루 종일 돌을 어떻게 산으로 올릴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정신, 그리고 피해 갈 수 없는 운명까지. 시지프의 하루는 과거의 열정의 어원인 'Pati'와도 닮아 있고, 운명을 말하는 'Fati'와도 닮아 있다.



알베르 카뮈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그것이 열정이 없으면, 고통만 있었다면 어떻게 시지프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은 또 다른 모양의 쾌락과 행복을 인간에게 선물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유학 초기, 한 프랑스 친구가 말했다. 같은 반 남자애만 보면 겁이 나는데, 자꾸 생각이 난다고. 너무 싫은데 계속 생각이 난다고.



대뜸 나에게 물었다.

"열정이 무슨 뜻인지 알아? 애증이랑 같은 건데 말이야..." 하면서 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자기는 그 아이에게 열정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열정이란 사랑과 증오가 함께 있는 거라고. 그 아이를 생각하면 고통스럽지만 계속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보지 않으면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열정의 한쪽 얼굴은 애증일지도 모르겠다.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는 것. 그렇기에 행복해지는 것.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위해 앞으로 가는 것.



결국엔 열정은 고난을 뚫게 하고 서사를 창조해 낸다.

시지프가 들어 올린 돌은 그에게 열정이었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그가 행한 행위에 대해서 대단함을 느낀다. 다른 작가나 예술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고통스러웠고 어쩔 수 없는 이야기에서 나온 작가의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 우리는 그들의 작업이 아닌 외부의 서사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서사는 또 다른 파토스가 되어서 관객, 혹은 독자에게 전달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파토스 이야기는 이미 앞서해서 따로 하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