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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Feb 24. 2022

선택권, 조용히 되찾아오기

2022.02.24

대학원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다들 빨리 탈출하기를 꿈꾼다. 학위를 받고 졸업해서 떠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다. 그렇지만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특히 전업 대학원생에게는 그렇다.


지도교수님의 프로젝트 업무, 지도교수님이 아닌 다른 교수님들의 프로젝트 업무, 각종 조교 업무에 학회 간사라도 맡고 있다면 학회 업무까지 추가된다. 당장 해야 하는 일에 쌓여 정작 중요한 일은 계속 미루게 된다. 수업 과제를 하고 논문을 읽는 것, 그것이 대학원생의 주 과제여야 하는데 조교 업무 때문에 이 일을 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후배들을 많이 보았다. 수업 과제는 당장의 데드라인이 눈앞에 있으니 다들 어찌어찌해서든 해냈다. 하지만 졸업하기 위해 필요한 종합시험, 학위논문 프로포절, 학위논문 쓰기라는 대과제 앞에서 학기를 미루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할수록, 잡무와 조교일을 더 맡게 된다. 거절할 힘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리고 졸업이라 쓰고 탈출이라 읽는 엔딩도 점점 더 멀어진다.  에둘러서 말했지만, 졸업하지 못할까 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쏟게 되는 동안 졸업은 더 멀어지는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슬프게도 그 사이클 안에 있을 때에는 자신이 갇혀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착취의 밈(meme)으로 소비되는 대학원생이 아니더라도 현대인 대부분이 자신의 시간과 미래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자신의 미래, 자신의 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선택권을 갖지 못한 것이다.



탈출계획 소문내지 말기,

조용히 준비하는 사람만 선택권을 되찾아온다

선택권은 조용히 가져와야 한다.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하겠다는 것인데, 남의 눈치를 봐야 할까. 봐야 한다.

선택권을 지금 내가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혹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세팅되어있는 상황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조직과 조직원의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같이 이 사이클에 묶여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굳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 없다. 습관성 푸념을 듣는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면, 시작도 전에 부정적으로 발목을 잡는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실행하자. 지금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먹고살 수 있으려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퇴사하더라도 살 길을 만들려면 우리는 선택권을 조용히 가져와야 한다. 진짜 퇴직하고 그곳을 떠나는 사람은, 매일 퇴직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이직을 준비하며 외부사람들과 네트 워킹하며 정보를 모으고, 자신의 경력을 정리해놓고, 헤드헌터를 만나고, 잡인터뷰를 하고, 조용히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선택권을 가져오기 위해 해야 하는 것

- 시간과 에너지 관리

- 대안 만들기

- 우선순위 변경하기

- 내 이름이 남는 것을 찾아내 집중하기



시간과 에너지 관리, 내 것을 아끼자

사이클에서 벗어나려면 그 사이클을 통해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들, 단기 마감을 해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온 마음, 시간, 에너지를 쏟지 말자. 사이클 안에서 나는 부품일 뿐이며, 언제든 교체 가능하고 사이클을 돌리며 쓴 내 모든 것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악착같이 시간과 일정관리를 챙겨야 한다. 일을 단순화하고 반복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원칙을 세우고 조직 내 공유해서 자신의 선을 만들어야 한다. 착한 사람, 후배, 동료가 되겠다고 자신의 시간을 펑펑 쓰는 것은 실제로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에너지를 함부로 쓰지 말자. 체력에는 감정 체력도 포함된다. 몸만 아껴 쓰지 말고 마음도 아껴 쓰자. 굳이 허비하지 않아도 될 감정 소비를 지양하자. 부정적인 감정을 쌓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피하고 숨자. 가십에서 멀어지자



대안 만들기,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자

선택권이란 두 가지 이상 선택할 거리가 있을 때, 비로소 권한이 된다. 지금 하는 일이 유일한 것이라면 선택할 권리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원하는 대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정보를 구해야 한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조언을 구하고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강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선순위 변경하기,

어차피 마감은 지킨다 중요한 일부터 하자

어차피 마감은 지킨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보다 내게 중요한 일을 먼저 하자. 중요한 일은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 마감 업무를 마치고 나면 이것을 시도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 내게 중요한 일은 마감을 감독하는 사람도 없고 애초에 마감이 없는 경우가 많아 가장 먼저 미루기 쉽다. 마감을 만들고 내게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 상단에 올려놓자. 내게 아주 중요하지는 않지만, 마감을 독촉하는 타인이 있는 한 우리는 그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에 우선순위를 밀리지 말자



내 이름이 남는 것을 찾아 집중하자

지금 하는 일 중, 내 이름이 남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같이 일했지만 성과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 주도하는 일을 보조로 돕는데 그치고 있다면 내 이름이 남을 수 있는 일을 찾아 집중하자. 이직할 때에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라고 정리할 수 있는 일들을 어떻게든 찾아내자.



선택할 힘을 가졌을 때, 변화

- 거절할 수 있다

-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 고부가가치를 선별하고 그것을 택할 수 있게 된다


아직 선택의 권한이 나한테 넘어오기 전이라 해도 일단 다짐하고 행동을 시작했다면 달라진 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다른 대안이 있다고 알게 되는 순간,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실체가 없는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거절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집중으로 이어진다. 거절을 통해 확보한 시간과 에너지, 감정 체력을 온전히 내가 쓸 수 있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 나는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뒤 점심을 혼자 먹었다. 점심을 빠르게 먹고 남는 시간을 활용했다. 당연히, 좋은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결국 그곳을 떠난 사람은 나고, 다른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체력이 예산 제한 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고부가 가치 업무를 선별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거절해도 된다는 것을 알아야 선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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