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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Mar 01. 2022

극단적인 야망과 무기력 사이에 둑을 짓는다

2022.03.01

극단적인 야망과 무기력 사이에 둑을 짓는다

나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이 아니다. 야망에 불타올라 열심히 살다가도 몇 번 계획을 지키지 않으면 바로 게으름이 몰려와 둑을 무너뜨리고 이내 무기력함으로 가득 채운다. 한 번 무너지면 다시 둑을 쌓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극단적으로 열심히 살거나 아무것도 안 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말이 좋아 라이프 스타일이지, 벼락치기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실한 사람을 가장 부러워한다.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 올해 내가 세운 목표 중 가장 거대한 것이다.


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 두 가지를 정했다. 평일에 <생존기록> 업로드하기와 매월 공모전에 지원하기. 아무리 몸이 피곤하고 지치고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 생겨도 이 두 가지는 무조건 해내기로 했다. 작은 둑이 무너져도 맨 뒤에 있는 이 것은 무너뜨리면 안 된다.



마지막 둑 지키기

그동안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아무리 늦어도 저녁이 되기 전에 업로드해왔다.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은 이제까지 위기와 다른 양상이었다. 일단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당일 마감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다. 체력과 시간 모두 나에게는 충분한 핑곗거리가 되었다. 11시에 마감을 지키고 노트북을 껐다. 마감을 지켰다는 후련함에 읽고 싶었던 소설을 펼쳐  페이지 정도 읽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마지막 둑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생존기록> 올리지 않았다.


11 40, 노트북을 켜고 <생존기록> 작성했다. 자정을 넘기면  된다는 마음으로 타이핑을 시작했다.  둑이 무너지면 나는  핑계를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장 관대한 나는 스스로 둑을 무너뜨린 다음 그런 자신을 가여워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미워할 것이다.  핑계로  아무것도  하겠지.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며 11시 59분 업로드에 성공했다. 자정을 넘기고 글을 올려도, 하루 정도 일정을 미루어도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회복탄력성을 갖추지 못했고 그렇지 못한 나를 용서하지도 않았다. 겨우 맨 뒤의 둑을 지켜내고 쓰러져 잠들었다.



인생경로를 바꾸는 둑 지켜내기

야망과 무기력 사이에 만든 둑은 두 가지 기준으로 세운 것이었다. 꾸준히 하는 습관을 만드는 일인가, 내 인생경로를 바꿀 수 있는 일인가. <생존기록> 올리기가 게으른 나와의 싸움이라면, 매월 공모전에 지원하기는 인생경로를 바꾸기 위한 분투다.


공모전 정보를 착실히 수집하고 일정표에 적어두면서 막상 지원하지 않았다. 아직 완성하지 못해서, 퇴고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세상에 내보이기 부끄러워서. 공모전을 흘려보낼 때마다 자괴감이 몰려와 일상을 회복하기 어려웠다. 핑계는 자괴감을 내 안에서 내보내지 못한다.


그래서 <생존기록>에 매월 공모전에 지원하겠다고 썼다. 그래야 지킬 테니까. 아무도 모르게 계획을 세웠다가 쓰윽 그것을 지우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 혼자 자괴감만 쌓아두지 않을 테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성실하게 공모전에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공개적으로 써 두어야만 겨우 지키는 사람이라니.


아무도 확인하지 않을 테지만, 2월 마지막 날, 노트북 폴더에 쌓여있던 원고의 먼지를 털어 우편으로 제출했다. 우편으로 지원하는 공모전에 도전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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