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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미 Sep 05. 2021

오늘의 구름




   당신의 글은 저희 출판사의 흐름과 방향에 맞지 않습니다. 라는 메일을 받는다. 출판사가 한마음으로 정해놓기라도 한 것인지, 매번 같은 내용이다. 다른 출판사에서 부디 출판되길 기원합니다. 라는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 출판사는 다른 출판사로 떠넘기고, 다른 출판사 역시 또 다른 출판사로 떠넘긴다. 등단이 목표였던 시절이 있었다. 험난한 신춘문예의 벽만 뛰어넘으면 글 쓰는 일, 책 내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다. 아니, 거기까지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등단하는 것이 워낙 어렵고 마음 졸이는 일이었으니까. 평생 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다. 그래, 나는 등단을 했으니 어쩌면 행운을 손에 쥐고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책을 내는 일은 등단하는 것만큼이나 복잡 미묘한 일이었다. 물론 나도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내는 일은 책 속에 담긴 글들이 오로지 그 그릇 하나에 담기는 일이고, 한번 내면 후회나 아쉬움이 들어도 거두기 힘든 일이니 매번 망설여졌다. 망설이다가 제안을 뿌리쳤다. 아이들이 아기였으므로 출간에 온전히 마음을 쏟아붓지 못했던 탓이다. 마음을 쏟아붓지 못한 글들을 세상에 내놓을 용기가 그때는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찾기 위해 하루를 사는 것처럼 나를 찾고 다녔다. 집안 구석에 잠깐이라도 숨을 새도 없이, 숨 가쁘게 두 아이를 온전히 키워냈다. 책 내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꾸준히 글을 쓰는 일. 쓰는 일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 한동안 글을 못 쓰고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만들며 지냈다. 글 쓰는 일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 쓰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등단하기 전부터 내뱉은 언어들과 아기를 키우며 틈틈이 발표해온 시, 그리고 다시 쓰기 시작하며 내면에서 길어 올린 글들. 이제 비로소 책 내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보고 싶어졌지만, 많은 출판사가 사라져갔고 출판사 하나가 많은 책을 내기 어려운 시절이 되어 버렸다. 등단하지 않아도 책을 내는 유명 방송인들이 많고, 등단했지만 무명한 작가들은 출판사가 감당하기엔 어려운 숙제가 되어버렸다. 서점과 서점 창고에는 정말 많은 책이 쌓여 있지만, 서점 밖으로 나가면 책 말고도 흥미롭고 즐거운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책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인간들로 변모하고 있다. 당신의 글은 저희 출판사의 방향과 흐름에 맞지 않습니다. 메일함 속에 쌓여 가는 거절 메일의 기록들. 나의 글은 구름의 방향과 흐름에 맞지 않습니다. 구름은 구름만 데리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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