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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미 Sep 24. 2021

오늘의 구름




   토마토는 천장까지 뻗어 나갔고, 가을이 왔다. 토마토가 여름의 끝을 알려주었다. 큰아이는 음악아카데미의 방학 동안 선생님께서 내주신 숙제를 해냈다. 슈베르트의 곡을 혼자 악보 보는 일이었다. 아이는 지난봄, 음악아카데미 오디션에 합격했다. 내가 권유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아카데미 수업이 있는 토요일을 아이는 설레면서 기다릴 정도로 무척 즐거워한다. 시창·청음 수업을 듣고, 이론 수업을 듣고 앙상블을 한다. 서울에서 내려오시는 선생님께 레슨도 받는다. 나는 아이가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 권유했지만, 이렇게나 좋아할 줄은 몰랐다. 겨울이면 수업이 끝이 나서 벌써 아쉬워할 정도이다. 아이는 아카데미 방학이었던 지난 두 달 동안 슈베르트의 곡을 혼자 악보를 보고 매일 연습했다. 악보를 맞게 보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수도 있고, 혼자 긴 악보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막힐 수도 있을 것 같아, 두 달 동안만 피아노 학원에 다녀서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었다. 아이는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스스로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말하겠다고 했다. 처음의 고비를 넘기니 앞에서 본 것과 반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수월하게 중간으로 넘어갔고, 마침내 끝까지 악보를 보았다. 매일 매일의 연습을 통해 완성을 배우는 일.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반복적인 일에서 뻗어 나간 새로운 가지들을 수용하고, 매일 같지만 다른 일을 꾸준히 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일과 닮아 있다. 내가 아이에게 악기를 권유한 이유이다. 이 법칙을 기억하면, 악기뿐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케이크를 먹었다. 토마토가 자신의 몸을 천장까지 밀어 넣는 이 신비롭고 기이한 일을 해내는 동안 덕분에 우리 가족은 웃을 수 있었고, 한 곡을 위해 작은 음표가 빽빽하게 적힌 악보를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지 않은 큰딸아이를 위해서다. 아이의 작은 손이 건반을 매만지고 있을 때,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의 장면처럼 아이의 뒤에서 슈베르트가 어쩌면 미소 짓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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