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2

by 강윤미

학교에 다녀온 아이의 손바닥에 낯선 초록색 열매가 있었다. 운동장에서 체육을 했다는 아이는 운동장 변두리에 떨어진 열매가 마음에 남아서, 급식을 먹고 나서 봉지에 담아서 집에 갖고 왔다고 했다. 반쯤은 썩었고, 반쯤은 단단한 초록을 아직 여물고 있었다. 벌레에 점령당한 후 못 버티고 나무에서 떨어진 그것은, 아마도 모과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노란 모과가 되기 직전, 울퉁불퉁해지고 모나기 전의 모과가 맞았다. 아이의 말처럼 모과의 생김새에 ‘왠지 갖고 오고 싶게 만드는’ 정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바다에 가면 조개껍데기를 줍는 부류였다. 주워 온 조개껍데기는 아이들의 특별한 스케치북이 되곤 했다. 조개껍데기에 그림을 그리던, 더 어렸던 아이들의 얼굴이 새삼 그립다. 작다고 보잘것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작아서 작은 것을 눈여겨보는 성정을 지녔다. 썩은 모과를 지나치지 않고 가져온 아이의 모습이, 아직 시를 쓰는 드문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도 닮은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아이에게 모과가 우리 집까지 오게 된 여정에 관해 일기와 만화로 표현해 보라고 권유했다. 아이는 선뜻 썩은 모과를 갖고 온 것처럼, 거침없이 만화를 그리고 글을 써서 보여줬다. 모든 아이가 예술적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 아이에게 예술적인 감성이 있어서 다행이다. 예술은 세상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고 믿는다. 썩은 모과를 들여다보는 오늘의 마음이 외롭지 않게 다독이는, 사랑이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2025. 10. 19. 방송






전주 MBC FM 99.1 MHz, <블루 레코드>방송. 일요일 오후 6시 30분.

<러브레터>라는 코너를 통해 강윤미 시인이 쓴 짧은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러브레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