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4

by 강윤미

색칠을 잘 한다는 건 뭘까. 꼼꼼하게 색칠하기 위해선 우선 테두리를 먼저 칠해야 한다. 그리고 테두리 안쪽으로 색을 조금씩 밀어 넣으며 채워가야 한다. 경계를 먼저 생각해야 자유가 열리는 것이다.


우리 집에 사는 아이는 그림의 윤곽을 의식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르면 색칠을 꽤 엉성하게 하고 빈틈이 쉽게 드러난다. 재미 삼아 미술 공모전에 그림을 보낼 때가 있는데, 아이의 빈틈 많은 그림은 선택받지 못할 때가 많다.


지난여름, 아이들과 서울에 가서 캐서린 번하드의 전시를 보고 왔다.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와 알록달록 색깔을 입힌 두루마리 휴지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아무렇게나 선을 비껴간 색칠. 아이같이 그려나간 물컹물컹 만져질 것 같은 그림들. 색칠을 꼼꼼하게 하지 않아도, 사방으로 색칠이 흘러넘쳐도 괜찮다는 사실을 아이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이의 눈빛에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A를 받지 않아도, 잘 그린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결국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는 사람이 화가인 것이다. 평가는 재능을 이어가는데 약간의 호소력을 발휘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결국 ‘하고 싶다는 의지’를 이길 것은 세상에 없다. 고유한 재능을 결정하는 건 재능에 대한 사랑. 부족한 재능일지라도 기어코 사랑하고야 말겠다는 의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2025. 11. 2 방송.


전주 MBC FM 99.1 MHz, <블루 레코드>방송. 일요일 오후 6시 30분.

<러브레터>라는 코너를 통해 강윤미 시인이 쓴 짧은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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