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라디오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청소년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온 늦은 밤에도 꼭 라디오를 듣곤 했다.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는 일은 너무나도 평범한 그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다. 사연을 써서 보내기도 했고, 종종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라디오 작가라는 꿈을 꾸기도 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남자가 카세트테이프로 노래를 듣는 장면을 보다가 고향집에 두고 온 카세트테이프가 생각났다.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용돈이 생기면 음반과 책을 사는 일이 최고의 사치였다. 생일 선물을 사준다는 선배가 있으면 근처 음반 가게로 데리고 가서 좋아하는 음반을 집어 들곤 했다.
오래된 가요와 팝송, 팝페라와 파두, 뉴에이지 연주곡과 클래식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을 좋아했다. 나는 빈 강의실에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강의실의 빈 의자 중에 마음에 드는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이어폰이라는 구부러진 골목길을 지나 내게 오는 음악. 좋아하는 음악 하나면 세상이 여러 겹의 무지갯빛 필터를 쓴 것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돌아오니 둘째가 라디오 앞에 앉아 있다. 둘째는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라디오가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저녁에 내가 즐겨 듣는 팝송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관심 있게 듣기 시작했고, 제목과 가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노래가 나온 연도와 새롭게 부른 여러 가수의 버전까지 찾아서 내게 알려준다. 아이는 자신이 라디오 작가이자 DJ가 된 것처럼 라디오 대본을 쓰고 글에 맞는 음악을 선정한다. 얼마 전, 아이가 쓴 라디오 대본에 선정한 곡이 1,000곡이 되었다. 아이와 나는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웃는다. 좋아하는 음악이 같다는 것이 웃게 만든다.
2025. 11. 16 방송.
전주 MBC FM 99.1 MHz, <블루 레코드>방송. 일요일 오후 6시 30분.
<러브레터>라는 코너를 통해 강윤미 시인이 쓴 짧은 에세이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