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귀여워

당신 다음엔 무엇 12

by 강윤미
클래식은 귀여워.jpg 그림 metaphor





일요일 새벽에 나오는 클래식 프로그램이 있다. 지상파 채널만 나오는 우리 집 텔레비전 특성상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요일과 시간을 기억해둔다. 지상파 채널만 있는 것은 프로그램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프로그램이 돌아오기까지의 일주일의 시간과 요일을 금쪽같이 여기게 한다. 놓치면 조금 섭섭하지만, 곧 안도한다. 찬스는 어김없이 돌아오니까.


물론 동영상 사이트나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지난 방송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걸 안다. 요즘엔 더 많은 경로가 있다. 하지만 시계를 자꾸 쳐다보며 때를 기다리는 기쁨과 설렘이 좋다.


큰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서부터 클래식 공연장에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였다. 오랜 시간 클래식 공연을 흐트러짐 없이 본다는 것은 어른으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음악가와 음악이라 하더라도 집에서 편한 자세로 감상하는 것과 사람들이 밀집해서 앉아 있는 공연장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박수를 쳐야 할 때를 가려내며 듣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옆을 살짝 돌려 보면 처음 듣는 음악도, 익숙한 음악도 집중해서 보는 아이의 옆모습이 보인다. 그것이 참 기특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는 어릴 때 그런 감정과 느낌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몇 주 전 새벽, 혼자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가 잠이 안 온다며 이불을 덮었다 말았다, 일어났다 누웠다, 화장실에 갔다 오기를 반복하는 아이를 소파 옆자리로 불렀다. 아이는 언제부터 혼자 봤냐고 했고, 나는 지금 물음을 쥐고 있는 아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봤다고 했다. 나는 초콜릿 상자에서 몰래 초콜릿을 꺼내 먹은 아이처럼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미안해지면서 환해진다. 아기였던 아이가 이제 음악을 음악이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됐으니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마냥 마음이 소복소복 가득 찬다.


표정의 주름살을 만들며 연주에 집중하는 연주자. 지휘자 뒤로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빛과 자세가 보인다. 공연장에 있다면 볼 수 없었을 ‘음악 듣는 사람들’의 얼굴들. 텔레비전에서는 악기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눈에 띄고 연주자의 손놀림과 목에서부터 얼굴까지 이어지는 근육의 떨림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자신의 파트가 아닌 곳에서 악기를 내려놓고 기다리는 연주자의 숨고르기가 보이고 지휘자의 몸짓과 손짓에 온정신을 쏟는 음악가들의 격렬하고도 고요한 고독이 숭고하다. 그들로부터 몸과 마음이 다른 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아이는 일요일 새벽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지낸다. 동생 옆에 자는 척 누워 있다 동생이 잠들면 얼른 소파에서 책을 읽으며 초콜릿 같은 시간을 기다린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아이에게 참신한 기분이 들게 한 모양이다.


무대에 앉은 연주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조율하다 일순간 하나의 음으로 시작하는 일. 조잘조잘 떠들다가 말을 해본 적 없는 얼굴로 잠든 아이처럼 음악은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책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