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기는 누가 사랑했을까

당신 다음엔 무엇 15

by 강윤미
밤공기는 누가 사랑했을까.jpg 그림 metaphor







라디오에서 김광민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가 흘러나온다. 오랜만이다. 이 익숙한 피아노

선율. 익숙한 음악이 나를 별안간 그곳으로 데리고 간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은 중산간 마을에 속해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에서도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집 옥상에 올라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여름밤, 옥상에 올라가면 한치잡이 배들을 볼 수 있다. 집어등을 켠 배들이 뿜어내는 불빛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 풍경처럼 아스라하게 젖어 있다. 확실한 형체는 없지만 분명 있는 것. 답답할 때면 옥상에 올라갔다. 그저 옥상 난간에 서서 희미하게 보이는 시내 건물들과 그 많은 집과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풍경 너머에 있는 바다를 보곤 했다. 밤에 보는 바다는 고요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웅크린 검은 짐승 같다.


옥상 한쪽에 돗자리를 펼치고 눕는다.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김광민의 <I Miss You Part II>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가 흘러나온다. 밤 천장에는 별빛들이 가득하다. 별빛들이 음악 속에 숨어든다. 나는 음악과 별빛과 사랑에 빠진다. 밤공기 속에 이 모든 것을 껴안은 내가 누워 있다. 바다 같은 밤 속으로 풍덩 빠진다.


낭만을 낭만으로만 생각해버리기엔 조금 헛헛했던 감정들이 옥상에 남아 있었다. 누구에게 그 헛헛함을 고백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별들을 보고 밤바다를 보고 음악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대학 시절에는 늦은 밤 시 쓰는 선후배들과의 술자리가 끝나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밤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대학교 벤치에 앉아 있거나 나무 옆에 앉아 있었다. 자취방에 가려면 교정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디든 주저앉거나 나무들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어둠의 종착지인 방문 앞에서 열쇠를 꺼내곤 했다.


엄마가 되고부터 밤에 밤 곁으로 홀로 나가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밤은 잠들면 완성되었지만, 나의 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거실을 괜히 서성거렸다. 잠은 오지 않을 때가 많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이 딱히 생각나진 않았다. 오랫동안 밤에 혼자 나가보지 못한 탓에 밤에 혼자 나간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다. 떠올리지 못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켜내야 하는 삶으로 돌아앉은 나는 이제 밤은 조금 무서운 것이 되었다. 밤에 생기는 흉악한 일들이 먼저 생각나고 창문 너머 보이는 아파트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것도 두려운 일이 되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거실 불을 차마 다시 켜지는 못하겠고 맞은편 아파트를 멍하니 쳐다볼 때가 있다. 한두 집 불빛이 켜져 있다. 그곳의 불은 왜 아직 켜져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조금 안도가 된다. 끝이 없이 펼쳐진 밤은 나 혼자 갖기엔 너무 크니까.


밤에 둘러싸인 밤공기를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마셔본 때가 언제였던가. 밤공기를 참 좋아했던 나는 멀리 가고 고양이들만 밤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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