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머리 아이

당신 다음엔 무엇 16

by 강윤미
커트 머리 아이.jpg 그림 metaphor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커트 머리였다.


엄마가 바지만 사다 줘서 바지만 입었던 것인지, 내가 커트였으므로 치마보다 바지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바지만 입고 다녔던 것인지 불명확하다. 나는 그저 ‘바지를 입은 커트 머리 아이’였다. 명화집에 간혹 껴있는 처음 들어 본 화가의 그림 제목 같다.


이따금 버스를 타고 시장이나 시내에 나가면 엄마의 지인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큰아들이 되어야 했다. 명절 때 동생들과 증조할아버지께 세배하러 가면 증조할아버지는 나를 낯설게 쳐다보시며 매번 “저 남자아이는 누구냐?”고 옆에 계신 친할머니께 물어보셨다.


내가 왜 짧은 머리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남자아이로 오해받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이나 민망함은 기억나지만,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이유나 설명을 엄마에게 요구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싫다고 말을 하고 싶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내가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낼 줄 모르는 아이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발기가 목덜미를 지나갈 때 나는 소리가 기억난다. 미용사는 얌전해서 착하다고 했다. 칭찬은 그럴 때나 듣는 거였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교복 치마를 입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참, 나는 보통의 남자보다 길고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과 살고 있는데 이것 또한 ‘원인과 결과’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까? 연애 시절에는 미용실에 나란히 앉아 머리를 돌돌 말고 우주선을 타기도 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에서 엄마·아빠의 머리카락이 비슷한 길이로 나부낀다. 바람이 스케치북을 훑고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샴푸 냄새가 풍금 소리처럼 풍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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