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기숙사

당신 다음엔 무엇 18

by 강윤미
스무 살의 기숙사.jpg 그림 metaphor







새빨간 담요 하나와 책 몇 권, 옷 몇 가지와 신발. 양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단출한 짐을 들고 기숙사에 입소했다. 짐 정리를 도와주고 나서 엄마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셨다. 엄마 없이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시작해야 하는 내 인생을 처음 실감했다. 택시 타고 가던 엄마의 뒷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헤어지고 만나는 일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시간이 허락해야 함을 깨달았다.


입소 첫날, 한 살 많은 언니는 내게 곰살궂게 말을 붙이고 학교 앞 대학로에 나가서 밥도 사주었다. 언니의 살가운 미소에 이끌려 언니가 있던 동아리에 덜컥 가입도 했다.


2학기 때 만난 방 짝은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책상에 책은 없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쓸 만한 큰 메이크업 가방을 놓고 눈썹을 붙이고 공들여 화장했다. 난 그렇게 큰 화장품 가방을 처음 봤을 뿐 아니라 대학 신입생이 신부처럼 보이는 진한 화장을 하는 것도 신기해서 그 아이를 조금 경계했다. 수업은 가지 않고 밤에 친구를 데리고 와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해서 2학기 내내 잠을 못 잤다. 벽 쪽으로 몸을 돌려 잠든 척했지만 스탠드를 켜고 밤새 수다 떠는 그녀들의 대화는 귓속으로 쉴 새 없이 들어왔다. 모르는 사람과 한방에서 자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글 쓰는 일은커녕 책 읽기나 사소한 일상을 이어나가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다짜고짜 따지지도 못하고 소심하게 시간이 흘러 종강하기만을 기다렸다. 결정적으로 그녀 덕분에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내가 타인의 시선과 눈길에 사로잡히면 내 존재와 까마득히 멀어져서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숙사는 11시가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10시 30분이 넘어가면 모임에 있다가 달려가야 했다. 점호 시간에 늦지 말아야 했고, 벌점제도가 있어서 벌점이 쌓이면 퇴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언니들과 이따금 돈을 모아 1층 화장실 창문으로 배달 치킨을 받아서 먹었고, 1년에 한 번 기숙사 축제 때 남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하고 동전을 넣어 탈수기에 넣어 옷을 짤 수 있었다. 폭발할 것처럼 들썩거리며 탈수기가 돌아가고 그 앞에서 멈추기를 기다리곤 했다.

닭갈빗집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적이 있었는데, 10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점호 시간을 맞추려는 기숙사생들로 엘리베이터가 꽉 찼다. 엘리베이터에 퍼지는 닭갈비 냄새가 눈치 보여 10층까지 계단으로 자주 걸어 올라갔다.


기숙사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었다. 그중 맞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면 한쪽 끝에 몸을 비스듬하게 세우고 잠깐 멈춰서 그 사람이 걸어가길 기다리고 나서 내가 걸어갈 수 있던 좁은 길이 있었고 그 길 바로 옆에 음악대학이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음악실 문은 열려 있었고 연습하고 있는 음대생들 덕분에 클라리넷 소리,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 같은 것들이 섞여 흘러나오곤 했다. 그리고 나도 가끔 음악실의 방 한 곳에 들어가 피아노를 쳐보곤 했다. 피아노 건반은 종일 손가락에 시달려 물러터지고 힘이 없었다. 누르면 시원하게 들어갔다 올라오지 않고 조금 시간이 걸렸고 소리도 둔탁했다.


작은 연습실 방문을 닫고 피아노 앞에 혼자 앉아 사소한 노래들을 사소한 기분으로 쳐보곤 했다. 제대로 피아노를 배워보지 못해서 연주가 되지 못한 서툰 음들의 행렬이 대부분이었지만, 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환상이 좋았다. 다른 방에서 각자의 악기로 연습하는 음대생들 덕분에 나는 잘할 필요 없었다. 나는 멀찍이 서서 귀만 대고 아이처럼 손가락으로 건반들을 만져보는 것. 그뿐.


금요일 저녁이 되면 모두 각자의 본가로 돌아가서 기숙사가 텅텅 비었다. 슬리퍼를 신고 걸어가는 내 발 소리가 긴 복도를 울렸다. 나는 종강할 때까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견뎌야 해서 그 복도를 괜히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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