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가 있는 곳에 어김없이
내가 있다

당신 다음엔 무엇 19

by 강윤미
라디오가 있는 곳에 어김없이 내가 있다.jpg 그림 metaphor





깨고 나서 잠들 때까지 라디오를 켜고 생활한다. 방마다 라디오가 하나씩 있다. 우연히 웹 서핑을 하다 발견한 앤티크 스타일의 라디오가 마음에 들어 들여놓은 것을 시작으로 방마다 그 브랜드의 다른 디자인을 가진 라디오를 놓았다. 원래 라디오가 있긴 했는데 지금은 안 쓰는 장난감같이 구석을 지키고 있다.

거실에 있는 라디오를 틀고 설거지를 하고 국을 끓이고 청소기를 돌린다. 바닥을 닦고 식물에 물을 준다. 방에 있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빗고 옷을 갈아입는다. 다른 방의 또 다른 디자인의 라디오를 켜 놓고 필요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시를 쓴다.


주로 클래식 채널을 틀어놓지만, 저녁에 하는 올드 팝 프로그램도 좋아해서 그 시간엔 꼭 그 채널로 바꾼다. 디제이가 읽어주는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나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안도하고 위로받는다. 새로운 사실을 알기도 하고 생전 처음 듣는 음악에 마음이 뺏기면 메모해뒀다가 선곡표를 다시 확인해서 음악의 정체를 꼭 알려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도 라디오를 좋아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하고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카세트테이프를 사 모았다. 불을 다 끄고 음악을 들으면 또 새로운 감성과 감상이 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대학 시절 자취할 때도 종일 디제이의 음성에 의지하곤 했다. 가요, 팝, 록, 포크, 뉴에이지 등 라디오나 잡지에 소개된 새로운 음반과 가수를 찾아 들었다. 공 CD에 좋아하는 곡을 녹음한 음반을 만들고 색이 고운 종이에 제목을 프린트해서 끼워서 친구나 선후배에게 선물하곤 했다.

좋아하는 음반을 찾아 듣는 것도 좋지만 라디오에서 어느 시간 갑자기 평소 좋아하는 곡이 흘러나오는 그 행운이 몸을 들썩거리게 한다. 좋아하는 곡이 불쑥 흘러나오면 지나간 시간이 떠오르면서 한때 내가 했던 행동이 자연스럽게 돋아난다. 어떤 풍경이 눈앞에 재방송된다. 내가 조금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이 설레고 조금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는다. 집이 조금 더 아늑하고 따스한 공간이 된 것 같고, 내 아이들을 온전히 품어주는 누군가의 손길 같다.


아이들 또한 배 속에서부터 라디오를 켜 둔 생활에 익숙해져서 적막한 집안보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좋아한다. 인형 놀이를 하고 클레이로 조물조물 무언가를 만들면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음악에 마음을 열어 놓는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는 큰딸과 이제 피아노를 시작한 둘째는 ‘베토벤’이나 ‘비발디’ ‘슈베르트’와 같은 이름이 나오면 이웃의 아는 사람처럼 반가워서 소리친다. 엄마가 좋아하는 팝이나 영화음악이 나오면 제목은 몰라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것은 안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와 같이 의미를 짐작조차 못 하는 가수들의 목소리와 선율에 마음 뺏길 때도 많다. 목소리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 좋아하니까 뜻을 모르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아이가 울고 웃고 찌르레기가 지저귀고 비가 빗소리를 내며 내리고 번개가 섬광을 일으키는 일. 모두 음악이다. 노래를 부르는 일은 그래서 꼭 가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박수를 칠 관객은 지금, 설거지통에 얌전히 거품 목욕 중인 그릇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흥얼거리며 관객을 깨끗하게 씻겨주면 된다.


참, 찌르레기는 모차르트가 좋아하던 새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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