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20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그해 겨울,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골목 입구에서부터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큰일이 난 것처럼 웅성거리는 행렬의 끝은 우리 집이었고, 우리 집 마당에서부터 그 일이 시작됐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 사람들은 ‘드라마’라는 것을 찍는 일을 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었다. 섬 속의 섬처럼 동네 사람들만 모여 살고, 외지인을 보기 힘든 그런 곳에 나타난 그들은 정말 신기한 존재이기에 충분했다.
마을 사람들은 촬영이 있을 때마다 우리 집을 둘러싸고 구경했다. 겨울이었고 추웠으므로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여자 배우들은 마당에 계속 있을 수 없어서 집안에서 기다리기도 했었다. 집안에 들어온 그녀들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한 여자 배우가 엄마에게 국수 좀 끓여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풍로에 냄비를 올려 어묵과 채소를 넣은 멸치국수를 끓이셨다. 중고등 학생쯤 됐던 아역 배우를 포함한 여자 배우 몇 명이 국수를 맛있게 먹었고 국수를 부탁했던 배우가 돈을 주었다고 했다. 엄마는 안 받으려고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배우는 한사코 엄마 손에 돈을 쥐여 주었다고 했다. 긴 촬영과 추운 겨울, 식당도 없는 낯선 곳에서 국수 한 그릇은 정말 값진 음식이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슬레이트집과 풍로, 한눈에도 가난해 보이는 살림. 딸린 세 아이. 배우는 국수를 먹고 맛있다고 고맙다고만 말하고 일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드라마 촬영은 마을에 있던 분교와 인근 마을에서도 이루어졌는데, 마을 사람들이 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했다. 나 역시 마을 사람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새로운 장소로 갔던 기억이 있고, 어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로 잠시 나왔던 것 같다. 기억은 고집이 세지만 변덕도 잘 부려서 내 기억보다 좀 더 많은 추억이 드라마 촬영과 연관됐을 수도 있고 별 얘기 없는 해프닝만 가득했을 수도 있다. 다시 드라마를 볼 기회가 있다면 어린 나를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옹색한 살림에도 빛나던 젊은 엄마를 안아주고 싶다.
세 아이를 먹이고 기르느라, 농사를 짓고 아버지 성미 맞추느라 젊었던 엄마는 젊은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줄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다 자라서 어른이 됐고 어머니는 더 자랄 데가 없어서 여전히 외로울 것이다.
국숫값을 줬다던 그 배우는 지금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다. 어머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어렸을 때, 학교에 다녔을 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이제껏 물어보지 못해서 미처 궁금하지 않았다. 음식 솜씨가 좋아 부엌을 떠나지 못했던 걸까.
채소만 넣지 않고 어묵도 넣어서 끓인 엄마의 국수.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음식을 하면 더하면 더 했지 절대 부족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