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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향기

4. 겨울, 동치미와 잘 어우러지는 막국수

by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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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랍니다. 감자와 옥수수를 거둔 한 여름 밭에 씨를 뿌리면 3달 정도만에 까맣게 알곡이 영급니다.


1970년대 강원도의 산촌 풍경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마음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봄에 심어놓은 감자를 캔 산비탈 밭이나 옥수수를 딴 밭에,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갈아엎은 뒤 메밀을 뿌리면 며칠 뒤 산밭엔 서서히 초록의 물결이 일기 시작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 9월부터 순백의 메밀꽃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곱게 피어났습니다. 변소가 마당을 가로질러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산촌의 집에서 밤중에 변소를 가려고 나섰을 때 만난, 달빛을 받아 물결치는 산비탈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경이로웠습니다. 어머니가 즐겨 입으시던 엷은 옥색으로 물들인 무명 치마저고리가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였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이 꽃들도 서서히 시들어가며 그 자리엔 연한 초록의 알갱이가 삼각형모양으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산을 덮고 있던 꽃들은 누렇게 빛이 바래가며 맺힌 알갱이가 서서히 통통하게 변하더니, 문득 찾아온 낯선 손님처럼 까맣게 영근 알갱이들로 붉은 메밀대궁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어머니가 저고리에 동정을 달거나 구겨진 부분을 펼 때 화롯불에 올려 달구어 사용하던 인두 모양을 닮은 알갱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어머니 생각을 했었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 <10월이 되자 나는 강변의 풀밭으로 포도를 따러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3장 ‘집에 불 떼기’의 첫 구절인데 강원도 산골짜기엔 강변도 풀밭의 포도도 없지만 메밀밭 주변엔 머루와 다래가 소나무를 휘어 감고 뻗었고, 9월 하순에서부터 머루는 까맣게 익어 제법 먹을 만 했습니다. 미국의 넓은 땅에서 자연적인 삶을 살려고 월든 호숫가에 소로우는 통나무집을 짓고 살며 기록을 했지만, 어쩌면 우리의 부모님들께서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더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0월이 되면 단풍이 산 정상부터 물들기 시작합니다. 이때, 누렇게 변해가는 칡넝쿨을 한발 길이 되게 낫질로 비스듬히 베어낸 뒤, 어슷하게 잘린 한쪽에 칼집을 넣고 어금니로 물고 한 손으로 잡아당기면서 두 쪽으로 갈라 몇 묶음의 다발을 만들었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볏단이나 농작물을 묶는데 사용하는 바인더 끈을 그 시절엔 칡넝쿨을 잘라서 만들어 썼습니다. 그렇게 끈으로 사용하기 좋게 가른 칡 줄을 허리춤에 묶고, 손에 낫을 든 채 메밀밭에 들어서서 메밀을 베며 단을 묶어갑니다. 메밀로 가득 찬 밭에는 붉은 줄기 사이로 나란히 단이 묶인 메밀뭉치들이 어린아이들의 서툰 줄 맞춤처럼 길게 늘어서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메밀을 꺾어 단을 묶은 뒤에는 밭에 팔뚝만한 참나무를 잘라 X자로 교차시켜 양쪽에 박고 교차된 부위를 칡넝쿨로 단단하게 묶습니다. 그 위에는 길게 잘라온 장대를 걸치고, 양쪽으로 메밀 단을 마주보게 세우며 중간으론 바람이 통하게 합니다. 너른 비탈 밭에 줄지어 서 있는 메밀 낟가리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참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가을볕에 메밀을 말린 뒤 알곡을 털어 키질을 해 티를 날리고 나서야 가마니에 담아 도장방에 넣습니다. 도장방은 이듬해 봄까지 먹을 양식과 파종할 종자를 상하지 않게 보존해주는 소중한 공간으로 산촌 사람들의 지혜가 가득 담긴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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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이 잎을 떨구기 시작하면 김장과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땔감을 준비해야 되었습니다.


산촌에서 농부들은 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단 하루도 쉴 수 없습니다. 볕이 잘 드는 자리마다 화전을 일구며 봄철에 파종했던 작물들은 거둬들일 일손을 재촉했습니다.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콩이며 팥은 껍질이 벌어지고 맨 땅에 그대로 떨어지기 일쑤였기에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낫을 챙겨 밭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족히 오리길 정도 거리라도 농사를 지을 만하다 싶으면 밭을 일구고 작물을 심어 길러야 겨우내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콩, 팥, 영근 옥수수, 들깨 등 거둬들인 농작물을 타작하며 찬바람이 불게 되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됩니다.


하지만 산촌에서 일손을 쉴 수는 없습니다. 서리가 내리기 전 김장을 준비하고, 겨우내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 땔감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힘없는 아이들도 찬바람이 부는 산에서 솔잎을 긁어 모아야 하고, 어른들 또한 쉬지 않고 일손을 돕습니다. 농번기엔 어머니들이 술을 담그며 대비한 농촌에서는 술을 별도로 사러 갈 일이 없었습니다. 많은 술을 빚어야 했기에 누룩은 항상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낙엽처럼 떨어져 하늘이 넓어지면 무와 배추를 거둬 김장을 합니다. 갓을 잘라 깨끗이 헹궈 새우젓 항아리에 차곡차곡 가지런히 놓고 소금을 뿌려 염장합니다.


1971년에 처음으로 박달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엔 왜무라고 하는 단무지용 무를 주로 심었는데 이 무는 길어서 지게에 쌓아 올리기 편했습니다. 반청무는 무겁고, 모양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을 옮기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산촌 사람들이 지혜를 여기에서도 발휘합니다. 곧게 자라는 참싸리 줄기를 꺾어다 발틀을 이용해 고드렛돌로 발을 짠 뒤 가는 줄기 쪽을 서로 교차시켜 엮으면 바소고리(지게소쿠리)가 됩니다. 흩어지기 쉽거나, 일정한 모양이 아닌 물건을 담아 나르기에 편한 이 바소고리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생계에 대한 지혜를 터득해왔던 것입니다.


이 참싸리로는 삼태기부터 곡식을 널거나 말리기에 편한 채반은 물론이고 다양한 크기의 다리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껍질을 벗기기도 하고, 껍질이 붙은 상태로도 만들지만 크기에 따라 허리춤에 묶을 수 있도록 끈을 양쪽으로 빼 놓은 건 씨앗을 담아 밭에 콩이나 옥수수, 팥과 같은 알곡을 심을 때 사용한다고 종다리끼라고 했습니다.


싸리나무는 산촌생활에 두루 이용됩니다. 싸리나무는 몇 종류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발이나 물건을 담는 용기를 만들 수 있게 매끈하게 줄기가 자라는 참싸리와, 잎에 솜털이 뽀얗고 밑동부터 잘게 가지가 어긋매끼로 갈라지기에 이를 활용해 빗자루를 묶어 사용하는 조록싸리가 있습니다. 사립짝, 또는 사립문이라 하는 담장을 둘러치고 들짐승이 담장 안으로 들지 못하게 닫던 문도 바로 이 참싸리를 엮어 만든 문이 원형이라 그렇게 불렀습니다.


바소고리를 지게에 얹어 무와 배추를 우물가로 져 나르면 본격적으로 김장이 시작됩니다. 배추를 밑동부터 칼집을 넣고 반으로 갈라 소금물에 담갔다 건져 켜켜이 소금을 뿌려가며 차곡차곡 샇아 올리고, 무는 깨끗이 씻어 작은 건 따로 골라 소금에 궁굴려 하루 묵혔다가 삭힌 고추와 무청 등을 넣고 샘물을 부어 동치미를 담가 저장해둡니다. 그리곤 무를 채썰고, 절이고 남은 갓을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멸치젓 달여 받힌 젓국물에 고루 섞어가며 고춧가루와 마늘, 생각을 찧어 넣어 하룻밤 숙성시킵니다. 두어 번 뒤집으며 절인 배추를 우물물을 길어 씻어 참싸리를 껍질을 벗겨 짠 발을 깔고 올려 물이 빠지게 한 다음 함지 가득 배추를 담아 나르며 준비해두었던 양념으로 김장을 담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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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메밀가루로 반죽을 치대어 냉장고를 이용해 숙성해 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필요한 양만큼 반죽을 떼어 국수틀에 넣고 전원과 연결된 스위치만 누루면 곧장 막국수가 가마솥에서 종일 끓는 물에 들어가 삶아집니다. 심지어 육수냉장고를 이용해 얼음물을 늘 준비해두고 건져 찬물에 헹군 막국수도 얼음물에 한 번 더 담가 찰기를 더 높이기도 합니다.


눈이 내리기 전에 서둘러 겨울을 날 땔감도 부지런히 모아두면 김장김치와 염장해 뒀던 갓은 허리가 빠질 정도로 눈이 내린 한겨울에 진정한 가치를 드러냅니다. 염장한 갓을 항아리에서 꺼내 맑은 물로 헹궈 군내를 뺀 다음 적당한 길이로 썰어 차가운 물을 붓고 거기에 들깨 빻은 걸 한 숟가락 넣어 갓물김치를 만들어 시원하게 반찬으로 먹었습니다. 이 맛은 칼칼하면서도 들깨가루 특유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져 겨울철만의 별미 중 별미였습니다.


소금에 굴려 파와 무청, 갓을 항아리에 넣고 돌로 지그시 눌러두었던 동치미도 이 시기가 가장 맛이 깊을 때입니다. 땅에 묻은 동치미를 꺼내 먹기 좋게 썰어 사기대접에 담고 동치미 속에 넣었던 무청과 삭힌 고추를 한두 개 띄워 적당히 간을 맞춰 맑은 물을 부어주면 그야말로 코끝이 찡하게 울리는 동치미가 되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별미를 즐길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장방에서 메밀을 덜어 맷돌로 껍질을 벗기는 동시에 타갠 뒤 절구로 빻아 가루를 내는 과정은 한 그릇의 막국수를 위한 과정으로는 고행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래전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런 일을 예사로 해내셨습니다. 떡도 한밤중에 만들어 나눴고, 닭이나 토끼 같은 동물도 한밤중에 운명을 달리하게 만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문화를 '추렴'이라 했는데, 여럿이 어울려 누군가는 팥을 가져오고, 또 누군가는 쌀을 내는 등의 과정을 거쳐 함께 어울려 장만한 걸 나누는 걸 이르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떡 추렴'이나 '막국수 추렴'과 같은 걸 기나긴 겨울 농한기를 틈타서 행했습니다.


떡도 그러하지만, 막국수는 "두 말 하면 잔소리"란 어르신들의 말씀 그대로 동치미와 잘 어우러집니다. 한겨울 산촌 마을에선 알맞게 맛이 든 동치미나 염장한 갓이 깊은 맛을 내는 이때를 기다려 메밀을 빻아 즉석에서 국수를 눌러 먹었습니다. 막국수란 이름은 '막 눌러 먹는 국수'라 해서 붙여졌다는 걸 그때 어른들의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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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얼음 동동 뜨는 동치미국물에 막국수를 말아 먹는 맛, 갓김치까지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일이 없습니다.


요즘이야 냉장고와 저온 저장고가 있어 사시사철 시원한 동치미를 먹을 수 있습니다. 겨울철 별미로 먹던 동치미 막국수는 언제나 작정만 하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갓도 철을 안 가리고 언제든 먹을 수 있는데 메밀로 막국수를 눌러 파는 음식점에서 동치미를 육수 대신 전문으로 하는 곳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갓김치나 갓물김치는 보기 어렵습니다.


막국수를 찾는 이들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대목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동치미 막국수라야 진정한 막국수지”라 하고, 또 누군가는 “육수에 김치고명을 얹고 양념장 곁들여 구운 김을 부신 가루를 넉넉히 넣어야 진정한 막국수다"”라고 합니다. 갓김치는 없어도 맵싸한 고추냉이나 묽게 풀어 바나나맛 우유처럼 멀겋게 풀어지는 겨자가 아닌 되직하게 갠 겨자를 주면 좋겠는데 그런 막국수집도 찾기 어려워졌지요.


출처: https://osaekri.tistory.com/31 [한사의 문화마을: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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