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 정식

낯선 도시에서 찾은 익숙함

by 니니

아래 글은 약 3년 전 상하이에 와서 “저는 한국인이에요. 중국어 못해요.” 이 말만 할 수 있던 시절, 28개월 아이와 낯선 도시에서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고민하던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의 글을 다시 읽으니, 아이를 데리고 매일 고군분투하던 저에게 “잘 버텼어, 수고했어”라고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고 싶어 지네요.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려 애쓰는 모든 분들, 특히 아이를 돌보는 엄마, 아빠 여러분 이미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 응원합니다.




오늘도 찾은 쇼핑몰 안 키즈카페

이 넓은 상하이에 내가 이리도 갈 곳이 없나 싶다. 남들은 일부러 여행을 와서 이곳저곳 잘만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인구 2400만 명 초거대도시 shanghai

아이들이 놀 곳도 구경할 곳도 많을 텐데 아직은 집 주변을 벗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유학을 시작으로 해외에 나와 산지도 10년이 넘었으니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어플 하나로 번역도 결제도 다 되는 세상 편리한 이곳인데 말이다.


아직은 낯선 곳이고 무엇보다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 완벽히 계획을 짠 후 머릿속에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야 실전에서 불편이 없다.


예를 들면,

아이가 놀만하다 싶은 목적지를 샤홍슈(小红书)나 따중디엔핑(大众点评) 어플에서 찾은 후, 지도 어플에 복사 붙여 넣기를 한다.(중국어가 안되니 직접 타이핑 불가)


집에서 가볼 만한 거리인지 확인 후 목적지를 선택한다. (어플로 개인 정보를 입력한 후 예약을 해야 하거나 티켓을 사야 할 때에는 조금 멈칫…)


그렇게 목적지가 정해지면 아파트 로비에서 내 위치를 두 번 세 번 확인한 후 택시를 부른다. (유모차는 미리 접어두고 아이 손을 꼭)


하지만 이렇게 만반의 준비가 끝이나도 긴장과 불안은 여전하다. 괜찮은 컨디션의 택시가 와야 할 텐데. 제발 담배 냄새가 나지 않길. 내 위치 똑바로 설정되었겠지? 위치 지정이 잘못되어서 기사 아저씨가 전화 오면 어쩌지. (전화를 받은들 설명불가)


이러한 과정을 혼자 해내야 하기에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에는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는 시도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찾은 쇼핑몰 안 키즈카페. 그리고 계속 눈여겨봐 왔던 일본식 돈가스가게 사보텐. 일본 체인 레스토랑이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돈가스 정식을 주문했다.


아직은 말도 음식도 낯선 이곳에서 ‘익숙함‘이 그리웠나 보다. 가리는 것 없이 지금껏 맛있게 잘 먹어왔는데. 순조롭게 적응을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일본음식이면 되었다. 메뉴와 맛은 중요치 않았다.(왜 한국음식이 아니라 일본음식이 먹고 싶었는지는 나도 설명이 어렵다)


산처럼 쌓여 있는 양배추에 참깨 드레싱을 뿌려 한입 먹으니 입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함께 나온 미소국을 곁들이니 속까지 뜨뜻해져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참깨드레싱을 뿌린 양배추 샐러드를 한입

두툼한 돈가스를 소스에 찍어 한입

새하얀 백미밥을 크게 한 숟갈

뜨끈 짭짤한 미소국으로 마무리


아, 오랜만이다. 익숙한 맛 익숙한 냄새

찰나였지만 행복했다.


늦은 오후의 한 끼가 내 하루를 다독여 주었고 나는 다시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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