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또 너와 나의 성장을 느낀다
아래 글은 2년 전 상하이의 코로나 기세가 한풀 꺾여 바깥나들이를 시도한 한 가족의 주말 이야기입니다.
주말 오후
매번 가는 곳이 아닌 새로운 동네에 가보자 싶어 중국 내 손꼽히는 대학이 있는 동네로 마실을 갔다.
워낙 유명한 대학인지라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공부하는 동네는 어떤지 궁금했다. 내심 우리 딸도.. 장래에..? 가능할까??라는 상상이 더해져 가는 길이 즐거웠다.
하지만 대학 내부는 미리 신청을 해야 들어갈 수 있고,
학교 정문에서 사진이라도 찍으려 했으나 아이는 유모차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터라 제대로 된 기념사진조차 찍지 못했다.
역시 인생,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그 길로 자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선 명품숍 가득한 쇼핑몰. 제로 코로나는 옛말이 된 지 오래. 가게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아무도 눈총을 주지 않는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주 2-3회 핵산검사를 하는 일상이었는데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행되며 정말 놀라운 속도로 모든 게 변했다.
쇼핑몰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큐알코드가 필요했었는데, 지금 이곳은 그렇게 엄격하게 관리하던 곳 맞나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규제가 풀리더니 순식간에 다른 나라가 된 듯 자유로워졌다.
오자마자 시작된 호텔격리, 어딜 가나 필요한 음성증명
폭발적으로 감염자가 증가한 시기에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가 “양(羊)이야? “ “아직이야? “
(양성인지 음성인지를 묻는 말장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변화의 시기에 건강히 잘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대학 시절 필드워크를 하던 감각이 아직 남아 있는지, 직접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경험이 새삼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상하이가 내게 더 애틋하고 특별한 곳으로 남게 했다.
화창한 날 덕에 야외 테이블이 있는 레스토랑은 만석이라 쇼핑몰 안에 있는 쉑쉑버거를 찾았다.
허기진 배를 간단히 채우고자 들어간 거라 시그니처메뉴들을 주문해 조금씩 나눠 먹었다. 아이가 아빠의 레모네이드를 궁금해했고 맛을 보고 싶은 눈치였다.
만약 두세 달 전의 나였다면
“안돼. 이건 아빠 거야. 너무 달아서 마실 수 없어” 하며 단호하게 물을 주거나 처음부터 아이가 마실 수 있는 100프로 무가당 주스를 같이 주문했을 텐데,
(애초부터 집에서 배도라지 주스를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래? 한번 마셔볼래? 새콤할 텐데 괜찮겠어? “
그랬다.
아이에게 레모네이드를 건네어주면서 나도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게 가능하다고? 나 자신 괜찮니?
요즘 이 정도는 줘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부쩍 아이가 컸다는 걸 느끼고 있다. 아이가 자란 만큼 내 마음의 여유도 자랐음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출산 직후의 나는 내 새끼 털끝하나 건들면 가만두지 않겠어! 라며 광선 레이저를 쏘아대는 동물의 세계의 어미 같았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품에 안고서 모든 게 처음인 일들을 ‘엄마’로써 해나가야 했으니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무엇이든 시간이 약인법.
시행착오와 더불어 아이와 보내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경험이 되었고 그 경험들이 나에게 여유를 선사했다.
그 여유 덕에 난 오늘 불편한 마음을 살포시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레모네이드를 건넬 수 있었고 새콤달콤한 설탕물에 아이는 싱글벙글 행복했다.
모두가 행복한 주말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