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잘 마는 법
요즘 아침마다 영어 회화 수업을 듣는다.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적이다 보니 선생님은 나에 대해 계속 물어온다.
어릴 적 기억 중 가장 즐거웠던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지,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런데 이런 질문들 앞에서 나는 늘 잠시 멈칫한다. 그리고는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대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도 비슷한 적이 있었다. 문득 내가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지조차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너무 당혹스러웠다. 나는 왜 나에 대해 이렇게 모르는 걸까. 그때 받았던 그 ‘이상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번에 영어 회화 수업을 하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 건, 문장의 완성도나 정확한 문법 표현을 구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내 안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내 속에 있는 감정과 이야기를 꺼내는 연습이 우선이었다.
아이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영어 회화 수업을 시작했는데, 아이 역시 영어로 술술 말하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을 쌓기 전에 먼저 영어라는 도구로 말할 수 있는 ‘경험‘과 ‘대화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뭐랄까.
김밥을 싼 뒤 마지막에 바르는 참기름 같은 존재 같다.
참기름을 바르면 음식에 윤기가 돌아 먹음직스러워지고 맛에 풍미가 더해지지만, 결국 김밥을 김밥답게 만드는 건 참기름이 아니라 속이다.
나를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언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건 내가 어떤 속을, 어떻게 채우느냐이다. 속이 부실하다면 아무리 고소하고 좋은 참기름을 발라도 김밥의 맛은 채워지지 않을뿐더러 김밥이라 부를 수 없지 않은가.
김과 밥만 단출하게 싸인 충무김밥이 될지, 여러 재료가 겹겹이 들어간 속 든든한 김밥이 될지는 결국 ‘속‘에 달려 있다.
돌아보면 나는 좋은 속재료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걸 잘 몰랐고, 또 어떻게 싸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김, 밥, 재료를 뒤섞어 때로는 비빔밥처럼, 때로는 주먹밥처럼 대충 뭉쳐 입에 털어 넣으며 살아온 것 같다.
나는 늘 나를 잘 몰라왔던 것 같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언제쯤이면 나는 나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누가 나에게 뭘 물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서 어떤 김밥으로 말지, 어떤 속재료를 더 채워 넣어야 할지 찬찬히 고민해 볼 것이다.
보기에 그럴듯한 김밥이 아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맛을 가진 김밥을 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