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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Jul 16. 2019

마흔, 나를 위해 펜을 들다

편지는 왜 쓸쓸히 사라졌을까

 누군가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이제는 구경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아직도 편지라는 말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이제는 먼 추억으로 사라져 버렸나 보다. 젊은 날 아련했던 사랑을 떠올리게 했던 편지는 왜 쓸쓸히 가버렸을까? 나는 세상의 모든 글 중에서 마음속 진실만을 꺼내 놓는 편지가 가장 아름다운 글이 아닐까 생각한다. 편지는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주기 위한 것이라 사랑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때 문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누구나 쓰지 못하는 글이 편지다. 편지는 늘 설렘을 동반해서 받는 사람의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편지는 서로의 행복을 주고받는 글이다. 누군가 보낸 뜻밖의 편지는 따스함을 품고 있어서 받는 사람의 얼굴에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한다.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편지는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든다. 거기에는 분명 누군가의 사랑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편지는 강력한 글이자 오로지 진실만을 얘기하는 글이다. 편지라는 진정한 마음의 글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항상 진심을 글에 담고자 하는 내가 편지를 즐겨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은 말보다 편지로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누군가 보고 싶을 때마다 편지를 쓰곤 한다. 편지지를 마주하고 펜을 들면 마술처럼 그리운 사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립고 보고 싶으면 편지를 쓰면 된다. 어느 순간 대상이 가만히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온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편지에 담긴 마음은 전하는 사람의 온기가 더해져 편지를 받는 대상의 마음에도 전달된다. 편지가 따뜻함을 품은 이유는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다. 편지의 대상은 둘이 될 수 없어서 다른 생각이 들어 틈도 없이 온 정신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쓰는 편지는 정작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에게도 기쁨을 안겨준다. 편지를 쓰면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만들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새 보고 싶었던 사람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사랑을 말하면서 미소는 빠질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편지는 사랑이 전부인 글이다. 그래서 어떤 편지든 글 하나하나에 사랑이 묻어있다. 이 세상에 사랑 없는 편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 없이 편지를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편지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편지는 가벼움은 덜고 고귀함을 부여하는 글이다. 말로 전하면 가벼울 이야기도 편지로는 진심을 담아 전하려고 한다. 그래서 누구나 편지를 통하면 가볍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다. 설령 말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편지를 통하면 진지함을 가질 수 있다. 편지는 모름지기 말이 많아야 미덕이다. 편지의 힘을 빌리면 말이 많아도 수다쟁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점이 된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더 길게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많아서 가볍게 보일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편지가 알아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편지의 주된 임무라서 그렇다. 편지는 남을 위한, 그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글이다.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보면 이미 전달된 느낌을 받는다. 대상을 떠올려 편지를 쓰는 순간 벌써 교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넘어 대상을 만나고 있다.  가슴으로 쓴 편지는 대상의 가슴에 똑같이 새겨진다. 그 대상 역시 가슴으로 읽고 가슴 곳에 저장한다. 편지를 주고받을 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설렌다. 왜 그럴까? 편지는 가슴이 쓰고 가슴으로 읽은 후 가슴으로 기억되는 글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한 글이 편지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보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확인해 보길 바란다. 잠시 책을 덮고 머리도 식힐 겸 진실을 확인해 보면 내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쓰는 순간 금세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내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편지를 받을 대상이 내 앞에서 미소 짓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 역시 지금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기쁜 마음을 가슴에 한껏 채운다. 편지라는 말만 썼을 뿐인데도 말이다.


 나는 정들었던 직원이 갑자기 회사를 떠나게 되면 편지를 써서 내 아쉬운 마음을 전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퇴사를 결심하고부터 대략 한 달 동안, 떠나는 직원이 아니라 남아있는 직원들 모두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떠나는 입장에서 내가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단지 내 부족함 때문이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어떤 성과도 보여주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서 퇴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마음 역시 똑같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내 자신을 위해 그럴듯한 인상을 남기도 떠나고 싶었다. 부족했던 나를 다시 한번 떠올려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나는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었기에 회사에 내 의사를 밝히고 일주일 정도 주어진 시간 동안 사무실 혹은 집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길고 막막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편지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시간이 매우 행복하고 즐거웠다.


 한 달 동안 70장이 넘는 편지를 쓰면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편지의 대상을 떠올리면서 글을 쓸 때면 편지를 받아보게 될 누군가 보다 내가 더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기분이 좋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내 앞에 대상이 그려지고, 또 지나간 일들을 끄집어내 방금 벌어진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였다. 41명의 직원에게 각기 다른 편지를 쓰면서 나는 그들을 생각했고,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하루 종일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라서 꼬박 한 달이 걸려 쓴 편지들이라 분명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어떤 글을 쓸 때보다 행복했다. 정확히 30일을 매달려 완성한 편지를 각각 2번에서 3번씩 다듬어 조금 더 매끄럽게 만들었다. 편지도 글이라서 어쩔 수 없는 초고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능력의 한계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부자연스러운 편지를 다듬지 않고서는 줄 수 없었다.


 5월의 마지막 날, 나는 이름에 맞게 각각의 봉투에 집어넣은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에 미리 도착해서 편지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새벽에 나선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도착해서 나는 각자의 자리에 맞게 편지를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미리 주문했던 김밥도 마침 도착해서 편지 옆에 한 줄씩 올려놓고 누가 볼까 봐 도망 나오듯 빠져나왔다. 운전을 하고 집으로 가는 내내 핸드폰에서 문자 도착 알림 소리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길이 막혀서 좋았던 날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문자의 내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두가 편지를 타인을 위한 글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편지는 자신을 위한 글임을 편지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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