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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Aug 23. 2019

가난한 밥상, 그리고 따뜻함

엄마의 음식 솜씨는 솔직히 대단하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처럼 악착같이 음식을 해서 먹이려는 생각도 거의 없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 밥상을 차리고, 또 때가 되면 점심과 저녁 밥상을 차려주었지만 올라오는 반찬은 언제나 비슷했다. 사실 엄마의 음식은 맛을 떠나 그냥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배고픈 시절이긴 했어도 우리 집은 정도가 심했다. 잘 살고 못 살고, 음식 솜씨가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엄마는 음식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조용하고 수줍은 여자였다. 하얀 피부에 소녀 같은 얼굴을 가진 엄마는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 가끔씩 사람들은 엄마가 천사 같다고 했다. 곱게 자란 엄마의 환경이 한몫 거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와 천사가 잘 어울려 보였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피아노와 글쓰기를 즐겼다. 여기저기 낡은 피아노를 치는 엄마의 모습은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가난하고 고단했지만 엄마는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피아노를 쳤다. 사실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일이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음식은 그저 한 끼 때우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니 엄마에게 어떤 열정이 있었다면 다른 일에 쏟을 것이 분명했다.


초등학교 1학년 내가 살았던 동네는 거의 대부분 연탄을 땠다. 연탄은 난방을 위한 것이었지만 음식을 조리하고 만드는데도 유용하게 쓰였다. 그 당시 우리 집에서 음식을 끓이고 조리할 수 있는 열기구는 연탄뿐이었다. 옆집은 물론 앞집에도 어김없이 분홍색 석유풍로가 있었지만 우리 집만은 예외였다. 음식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엄마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어떻게 연탄불 하나로 날마다 여섯 식구 밥상을 차릴 수 있었을까? 밥을 짓고 또 찌개를 끓이고 감자라도 볶아야 했었을 텐데, 그 불편함을 무슨 수로 감수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오직 새벽잠을 줄여야만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형편도 형편이었지만 찌개, 국, 나물, 볶음, 조림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 생김새나 맛이 모두 같아 보였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어떤 불평 없이 먹었다. 나는 어렸지만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었으니까. 가끔은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반찬에 대한 불만이었지 결코 엄마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솜씨가 조금 부족해도 사랑 없이는 결코 차릴 수 없는 밥상일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저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죽이든 밥이든 고맙게 먹는 것이 밥상에 대한 예의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가난한 밥상 일지는 몰라도 식구가 따듯한 방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위로이자 행복이었으니까.


가난을 이해하고 엄마를 이해한다 해도 나는 언제나 배가 고팠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풍족한 때가 아니기도 했지만 형편이 그나마 좋은 집은 음식이 넘쳐났다. 물론 그런 집은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열정 또한 대단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몰라도 친구들의 집 역시 우리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집처럼 시래기가 들어간 된장국이나 김칫국이 올라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밑반찬이라곤 배추김치 하나뿐이었지만 따뜻한 친구 엄마가 내준 음식을 친구와 함께 꼭꼭 씹어 삼켰다.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고기는 구경도 못하는 시절이었으니까 우리는 그게 음식의 전부인 냥 생각했다. 구경해 본 고기라곤 제삿날 뭇국에 들어간 고기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어느 날, 엄마는 우리 사 남매를 두고 떠나갔다. 왜, 떠나야 하는지 이유를 알았기에 그 누구도 엄마를 붙잡지 못했다.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그 기억이 희미하지만 엄마가 나간 후, 맞닥뜨린 아침은 여느 때와 달랐다. 부엌에서 들려오던 소리도 없었고, 냄새도 없었다. 형과 누나들을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모두가 느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배고픔도 보고픔도 아니고, 나는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무렵, 숙직 근무를 마친 아빠가 무표정한 얼굴로 안방으로 들어섰다. 숙직을 했을지라도 이른 시간 집에 오는 경우는 없었는데,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 컴컴한 방에서 더 어두운 아빠의 얼굴과 마주했다.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자리, 나는 어색하게 껴서 아빠의 입이 열리기를 바랐지만 아빠는 고개를 숙인 채, 그 어떤 미동조차 없었다. 탁하고 묵직한 공기가 가득 찬 방, 예배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몰래 고개 들어 아빠와 형의 표정을 살펴보려 했지만 이내 분위기에 휩쓸려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배고픔은 생각보다 참기 쉬웠다. 하지만 아침마다 온기를 잃어버린 듯한 공기가 엄마의 부재를 매번 상기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마음도 조금씩 적응해 갔지만 엄마의 밥상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배고픔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엄마의 온기가 그리웠던 것이다. 낡은 밥상을 이리저리 행주로 훔치던 엄마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했다.


노을이 빨갛게 물들던 어느 날, 한동안 잊고 지냈던 된장찌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있었다. 또한 나무 도마와 둔탁한 칼이 부딪히는 익숙한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부엌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숨이 멎을 듯했다. 당장 달려가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나 때문에 또다시 엄마가 사라질까 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 사 남매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 둘러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 옆에 비스듬히 돌아앉아 코를 훌쩍거렸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방바닥을 집고 있는 내 손 위로 엄마의 손결 느껴졌다. 밥상 위 뚝배기가 초점을 잃고 오목하게 올라왔다. 엄마가 나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도 엄마의 품도 따뜻했다.


엄마 없이 우리는 그렇게 떨어져서 일 년을 보냈었다. 그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참아냈는지 생각은 나지 않는다. 기억의 일부분이 지워진 사람처럼 희미함조차 없다. 내가 너무 어려서일까? 어쩌면 내 기억은 그 시간을 애써 잊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 대한 보고픔이 그 시간을 모두 덮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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