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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Sep 26. 2019

운명일지도 모른다

아주 사적인 글쓰기 예찬론

나는 운명을 믿는다. 운명론자라는 거창한 말을 갖다 붙이기에 미흡하지만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운명론이란 세상만사가 미리 정해진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하는 사상이다. 인간의 의지와 별개로 정해진 수순에 따라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고 말한다. 내가 믿는 운명은 세상이라는 큰 개념이 아니라 한 개인에 국한돼 있다. 당연하겠지만 나 자신만을 말하는 것뿐이다. 태생부터 정해진 무엇 때문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고, 지금껏 살아온 세월은 분명 내 삶이 맞지만, 나는 그저 어떤 이끌림에 여기까지 왔다고.


내가 생각하는 운명이란 이렇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작은 운명인 것이다. 내 의지로 일어나 준비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이전에 이미 주어진 생활이다. 다시 말하면 출근해야 할 직장이 있는 것이 운명이 아닐까 한다. 또한 내가 집을 나서면 누구보다 빨리 회사에 도착할 수도,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기다리던 버스가 여느 때보다 빨리, 아니면 유독 늦게 올 수도 있을 테니까.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분명 내 의지지만, 버스가 빨리 오고 아니고는 결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상황은 오로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희로애락이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모두 과거가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정해진 길을 따라왔다는 생각뿐이다. 그것이 현재일 때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시간이 과거가 됐을 때는 달랐다. 사실 운명이라는 것도 과거가 돼야지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든 현실이든 결과가 되었을 때, 드러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내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 또한 만만치 않다. 태생부터 얘기해 보면 먼저 남자, 또는 여자로 태어날지가 운명의 시작이다. 아니 어쩌면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첫 번째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뭔가 노력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인간이든 동물이든 태생은 의지가 아니라 주어짐이다. 내가 운명을 믿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이다. 태생 자체가 의지였다면 나는 운명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작이 주어짐이니 인간의 삶 역시 정해진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이다.


내가 운명론을 믿고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불과 몇 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내 나이가 사십이 되었을 때 ,비로소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전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 심각하게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살아온 세월이 겹겹이 쌓였을 때 즈음, 지나온 과거를 떠올려 보며 운명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봤을 뿐이다. 운명일지라도 드러난 과거 없이는 거론하기조차 힘들 테니까.


나는 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의지에서 찾지 않고 정해진 길에서 찾고자 했을까?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일이 꽤 많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살아온 세월을 되짚어 보면 물 흐르는 대로 살았지, 뭔가 거슬러 산 것 같지도 않았다. 이미 내 삶이 과거가 돼 버렸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를 사는 지금 역시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자 할 뿐이지, 내가 할 수 없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나는 지금 커피숍에서 글을 쓰는데, 오늘은 여기가 아니라 집에서 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과 다른 장소에서 글을 쓰고 있다. 또한 내가 커피숍에 막 도착했을 때, 앉을 자리 없이 모두 만석이었는데, 마침 누군가 일어나길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면 지금 쓰는 이 글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자리에 앉았을 때만 해도 나는 뭔가를 쓸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집을 나오면서 글을 쓸까, 아니면 친구를 만날까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친구를 더 바라는 듯했지만, 그와 다르게 발걸음이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내 마음과 달리 결론적으로는 잘 된 일이다. 육체가 정신을 이끄는 일이 꽤 많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개의치도 않지만.


내가 운명을 거론한 것은 당연히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글과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내가 이렇게 매일매일 글을 쓸 거라 상상할 수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도, 그렇다고 뭔가 계획이 있어서 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쓴다. 그저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어쩔 수없이, 그리고 내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기약 없는 글을 쓴다. 그것이 운명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오늘도 용기를 내본다. 현재의 시간은 분명 과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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