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둠으로 돌아오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의미
최근 몇 년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멀티버스, 즉 다중우주 세계관을 도입하며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구축해 왔다. 이는 다양한 캐릭터와 세계를 엮어내면서 관객들에게 신선함과 흥미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멀티버스 개념은 몇 가지 중요한 이유에서 마블 세계관에 치명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개봉을 발표한 둠스데이에서 이미 사망한 캐릭터인 아이언맨이 다른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이러한 우려가 내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멀티버스의 도입은 영웅의 죽음과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울버린풀의 사례를 보자. 로건에서 울버린은 감동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팬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의 죽음은 그가 다른 우주의 다른 몸으로 살아오면서 겪어온 고통과 희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루어낸 자기희생의 결과였다. 이는 울버린 캐릭터에게 진정한 마침표를 찍어주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멀티버스는 이런 감동적인 순간들을 간단히 무효화한다. 예를 들어, 울버린이 다른 우주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그의 장렬한 죽음은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로 격하될 뿐이다. 이러한 설정은 영웅의 희생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고, 결국 팬들은 스토리에서 감동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둠스데이에서 아이언맨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비슷한 문제를 야기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은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우주를 구하며 감동적인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의 희생은 그가 이전까지의 이기적인 모습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났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멀티버스를 통해 또 다른 버전의 아이언맨이 등장한다면, 그가 이룩한 희생과 결말은 그 가치를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 팬들은 진정한 아이언맨의 영웅적 순간을 기억하는 대신, 그저 또 다른 아이언맨의 변주를 접하게 될 것이다. 이는 영웅의 장렬함을 퇴색시키고, 서사의 무게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멀티버스는 "단 하나"라는 특수성을 파괴한다. 마블의 영웅들은 그들이 지닌 유일무이한 특성으로 인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이언맨은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성격을 통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그가 존재하는 유일한 우주에서 그의 이야기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만의 독특한 마법과 철학으로 인해 단일한 우주에서 그 가치를 발휘했다. 그러나 멀티버스의 도입은 각기 다른 우주의 수많은 아이언맨과 닥터 스트레인지가 존재하게 만들며, 그들의 고유성과 독특함은 희석된다. 더 이상 "우리 우주"의 아이언맨이나 스트레인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캐릭터는 단지 여러 개 중 하나에 불과해진다.
이러한 설정은 팬들이 캐릭터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제 각 캐릭터는 단지 다양한 버전 중 하나일 뿐이며, 그들이 이룩한 성취와 희생은 다른 버전의 캐릭터로 인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블 유니버스가 단일한 세계관에서 풍부한 캐릭터 드라마를 만들어내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멀티버스는 그만큼의 깊이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히 스토리의 복잡성 문제를 넘어서, 팬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와 그들의 이야기에 더 이상 강하게 연결되지 못하게 한다.
멀티버스의 개념은 또한 서사의 일관성을 파괴하고 관객에게 허탈감을 준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완다는 다른 우주의 비전과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불행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이는 캐릭터에게 감정적 고통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객에게는 완다의 서사를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제 완다는 단순히 하나의 서사 속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우주에서 자신의 불행을 마주하며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는 서사적 흐름을 깨뜨리고, 캐릭터들은 멀티버스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또한, 멀티버스 설정은 캐릭터들이 더 이상 자신의 현실에서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여러 우주에서 자신과 사랑하는 여성과 이어지지 못하는 운명을 마주하는 것은 그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동시에 그가 어떤 우주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지 못하게 만드는 결말을 초래한다. 이는 관객에게 깊은 허탈감을 안겨주며, 멀티버스가 제공하는 것은 결국 더 큰 절망과 복잡성뿐이라는 느낌을 준다.
마블의 멀티버스 세계관은 신선한 시도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영웅의 장렬함, 단 하나라는 특별함, 그리고 서사적 일관성은 멀티버스의 혼란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특히, 둠스데이에서 암시된 아이언맨의 닥터 둠으로의 재등장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강화한다. 이미 감동적인 희생으로 마침표를 찍은 캐릭터가 또 다른 형태로 등장한다면, 그의 희생은 단지 멀티버스 속에서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는 허무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관객은 영웅의 희생에 공감하고, 단 하나의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며, 일관된 스토리 속에서 감동을 느끼길 원한다. 아마 마블도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최근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해당 문제를 직접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멀티버스는 이러한 요소들을 희석시키며, 결국 관객에게 허탈감과 공허함만을 남길 위험이 있다. 마블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그리고 멀티버스가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앞으로의 작품들이 증명할 것이다.
p.s. 데드풀과 울버린에서도 멀티버스 세계관은 크게 중점적인 소재로 사용된다. 다만 데드풀이라는 특수함 때문에 이것이 그다지 중요하다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실컷 비판적으로 써놓았으면서도 휴 잭맨의 울버린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보니 좋더라...... 하지만 이런 경우는 배우와 감독과의 친분, 오랜 팬덤에 대한 찬사와 팬서비스(ex) 스파이더맨)의 일종이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수많은 데드풀이 나와 데드풀과 울버린이 그들을 모두 죽이는 장면이나 기타 영화의 다른 소재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즉, 데드풀에서는 데드풀스럽게 멀티버스를 특유의 하찮은 블랙 개그 감성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갈래가 달라 크게 부정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