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더는 고립된 감정이 아니다
“누구 하나라도, 나의 하루를 궁금해해 줬으면 좋겠어.”
그 말은 내 지인의 술자리 끝자락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는 45세, 두 아이의 엄마였고, 이혼한 지 3년 차였다.
직장은 안정적이었지만 인간관계는 그다지 다채롭지 않았다.
“애들 챙기고, 출근하고, 야근하고, 집에 오면 불 꺼진 거실이야.”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그녀는 어느 날 ‘데이팅앱’을 깔았다.
그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주변에는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데이팅앱에 있었다.
자발적 싱글, 연애 공백기, 이혼자,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까지.
누구나 이유는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외롭다”는 말을 사람들 앞에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모두 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SNS 속 수백 명과 연결돼 있으면서도,
정작 ‘말을 건네고 싶은 사람’은 없다.
퇴근 후 엘리베이터에 혼자 올라타고,
냉장고 문을 열어 혼밥거리를 찾을 때,
문득 드는 생각.
“오늘 하루, 누가 나를 떠올렸을까?”
데이팅앱은 그 ‘텅 빈 한 줄의 문장’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당연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그건 결코 낯설거나 특별한 욕망이 아니다.
단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외로움이 ‘너무도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35세의 남자 후배는 “회사-집-헬스장”이 하루의 전부라고 말했다.
모임은 뜸하고, 소개팅은 더 이상 없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곳은 없다.
대학 동기 중 절반은 이미 결혼했고, 남은 절반은 연락이 끊겼다.
“이제 연애는 다 알고 있는 사람끼리 갑자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자기소개서 쓰듯이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를 반복하는 것도 지쳤고요.”
그가 말한 건 데이팅앱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눈에 조건이 보이고, 상대의 취향도 확인할 수 있다.
서로가 원하는 대화를 ‘맞춤형’으로 고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정보와 기대 속에서
진짜 사람보다 ‘프로필’과 대화 기술만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앱을 켠다.
“어쩌면… 오늘은 누군가와 진짜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요.”
50대 여성 지인은 데이팅앱에서 만난 남성과 현재 동거 중이다.
“둘 다 이혼했고, 각자의 삶이 있었고, 그냥 식사 메이트라도 좋다고 시작했어요.
근데 대화가 되니까 사람 자체가 좋아지더라고요.”
그녀가 선택한 건 ‘일반적인 연애’는 아니었다.
연애보다는 관계, 책임보다는 동행.
서로 간섭하지 않되 외롭지 않게.
그녀는 말했다.
“요즘 시대엔 그게 사랑의 한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과거의 소개팅은 조건의 검증이었지만,
데이팅앱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
이혼했다고, 나이가 많다고, 아이가 있다고 제외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먼저 밝히고 시작할 수 있는 솔직함의 공간이다.
물론 데이팅앱의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지인의 언니는 3개월 동안 연락하던 남성에게 500만 원을 송금했다.
사진도 통화도 다 자연스러웠지만, 알고 보니 ‘로맨스캠’이었다.
“너무 바보 같았죠. 근데 그 사람이랑 얘기할 땐 진짜 외롭지 않았어요.”
피해자들은 후회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
“적어도 그때는 누군가가 날 위하는 것 같았어요.”
그 감정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설명하기도 민망하다고.
이 시대의 외로움은, 때로는 위험까지도 감수하게 만든다.
거짓을 알면서도 기대하게 되는 마음.
그 속엔 '누군가 나에게 관심 가져줬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매일 밤 30분씩 앱을 켠다.
어떤 사람은 두 달에 한 번씩 대화를 시도한다.
어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앱을 삭제하고, 또 다시 설치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앱에서 만난 인연과 연애를 하고,
심지어 결혼을 하기도 한다.
물론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낮은 확률’이 희망이 된다.
과거에는 연애가 인생의 필수코스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혼자 잘 사는 것’이 기본값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연결을 갈망한다.
데이팅앱은 그 갈망이 흘러 들어가는,
가장 현대적인 통로다.
그 안엔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랑을 꿈꾸는 사람,
가족을 돌보느라 잠시 멈춘 감정을 다시 찾는 사람,
상처를 딛고 새로운 마음을 받아들이려는 사람,
그냥 오늘 누군가와 ‘안녕’ 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있다.
“꼭 사랑을 만나려고 들어간 건 아니었어요.
그냥… 누군가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을 찾고 싶었어요.”
그녀의 말이 오래 남는다.
이 시대의 데이팅앱은
‘연애를 위한 앱’이라기보다,
연결을 위한 마지막 다리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 조금씩 외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