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조건, 사진 — 프로필로 사람을 고른다는 것

데이팅앱 안에서 벌어지는 ‘선택과 탈락’의 풍경

by 고요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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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소개만 봐도, 이 사람은 ‘패스’겠구나 싶어요.”
데이팅앱을 시작한 지 6개월 된 43세의 지인 K씨가 말했다.

“그래도 난, 한때 누군가의 아내였고, 엄마고, 직장인이에요.
근데 이 앱 안에서는 그 모든 게 숫자와 단어로 압축되거든요.
나이, 직업, 키, 거주지, 자녀 여부, 사진.
그걸로 다 판단받는 느낌이에요.”


K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고르는 사람’이라기보다

‘선택당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첫인상은 1.5초


K씨가 처음으로 ‘좋아요’를 눌렀던 남자는 47세의 마케터였다.
사진 속 그는 반듯한 정장 차림에 커피를 들고 있었고,
한 줄 소개에는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인연이면 좋겠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그냥... 사진이 따뜻해 보였어요.

눈도 부드럽고.
근데 사실 그걸 판단하는 데 걸린 시간은 2초도 안 됐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말한다.
겉모습보다 내면을 보라고.
하지만 데이팅앱에서는 겉모습이 내면으로 가는 유일한 입구다.





'좋아요'의 기준은 과연 공정한가?


K씨는 어느 날 문득,

앱에서 자신이 받은 ‘좋아요’ 수가
주변 친구들보다 현저히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친구는 사진도 귀엽게 찍고,

나이도 어리고,

아직 미혼이거든요.

난 이혼했고,

아이도 있고,

나이도 40대 중반이에요.

앱 안에서는 그게 ‘감점 요인’인 거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더 쓰라리다.

내 삶에 자부심이 있었고,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여겼는데,
몇 줄의 조건과 사진 한 장으로 탈락 통보를 받는 느낌.


“좋아요” 하나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그게 단순한 호감 표현이 아니라,
‘나는 너를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라는

인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숫자로 환산되는 자기소개


K씨는 프로필을 여러 번 고쳤다.

처음에는 성실하게 적었다.

1979년생

직장 15년 차

이혼 2년 차, 아들 1명

서울 거주

독서, 산책 좋아함

하지만 이 프로필로는 관심을 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 항목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아이 이야기 삭제,

이혼 경력 언급 생략,

사진은 가벼운 셀카로 교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솔직함이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공간이라면
나도 조금은 가면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 공간은 ‘진정성’보다

‘매력’이 먼저 작동하는 세계였다.
그리고 그 매력은 말과 태도가 아니라,
조건표의 배열 순서와 사진의 구도로 평가된다.




사진 한 장이 주는 선입견


앱 안에서는 수많은 얼굴이 매일 스쳐간다.
화려한 필터,

꾸며낸 웃음,

여행지의 한 컷,

고양이를 안고 있는 셀카.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내가 고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K씨는 말한다.
“저 사람 정말 저런 분위기일까?
가까이서 보면 또 다를 수도 있잖아요?”


맞다.
그러나 데이팅앱에서는 가까이서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관심조차 받지 못하면,

대화는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건은 '안전장치'이자 '장벽'


K씨는 56세의 남성과 대화를 이어간 적이 있다.
그는 자녀가 장성했고,

이혼 후 8년 동안 혼자 살았다고 했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지만,

조건표에는
‘월수입 600만 원 이상 /

자가 보유 /

키 178cm’ 등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보면서 오히려 마음이 멀어졌어요.
왜냐하면...

내가 그 ‘조건 리스트’에 맞는 여자인지

자꾸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더라고요.”


조건은 때로는 나를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그 조건이 너무 구체적이면,
사람을 보기 전에 리스트만 검토하게 된다.


누군가를 알아가기도 전에,
“내가 그 사람의 기준에 부합하는지”부터 따지는 연애.
그게 바로 데이팅앱이 불러온 선택의 피로감이다.





선택되지 않는 사람들


K씨의 지인인 H씨는 60대 여성이다.
남편과 사별한 지 7년, 자녀는 모두 출가했다.
그녀도 요즘 데이팅앱을 사용한다.

“사람이 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열 명 중 아홉은 연락을 안 해요.
연락을 해도,

한두 마디 하고 끝이고요.”


그녀는 앱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대기열에 걸린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선택되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조차 안 되면 그냥 로그아웃되는 사람.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건,
'존재는 있지만,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선택은 자유지만, 무관심은 상처다


누군가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의 존재가

‘단순히 스와이프할 수 있는 물건’이 되어버릴 때,
그건 관계가 아니라 소비다.


사람을 고르고,

판단하고,

통과시키고,

탈락시키는 이 반복된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잊기 전에,

스스로도 조금씩 지쳐간다.



“나는 아직도, 사진보다 목소리를 먼저 듣고 싶은 사람이에요.”
K씨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진이 먼저고,

조건이 두 번째고,

대화는 그 뒤에야 겨우 시작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프로필을 넘기고 있다.
낯선 사람의 사진을 보며,
혹시 이번엔 진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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