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누군가와 대화를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외로워져요.”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40대 초반 이혼 2년 차인 지인 K씨와의 대화 중이었다.
어느 날 밤, 맥주 한 캔을 손에 든 채 그녀는 휴대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봐. 이 사람은 어제는 ‘좋은 밤 되세요’ 했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읽씹이야.
이건 뭐, 감정 노동을 내가 다 하네.”
그녀는 앱을 켜면 한두 명의 새 남성이 메시지를 보내온다며 웃었지만,
그 웃음 끝은 쓸쓸했다.
이혼 후 삶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데이팅앱을 시작한 그녀는,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도 정작 ‘연결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그녀가 앱에서 마주한 사람은 5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프로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S대 졸업. 현재 반도체 관련 사업중.
외로운 저녁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습니다.
사진은 사무실 앞에서 정장을 입고 찍은 중후한 이미지였다.
K씨는 ‘그래도 성실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대화가 시작되자 곧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자기 자랑이 80%였어요.
내가 얼마나 좋은 집안 출신인지,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여자는 자기 수준에 맞아야 한다는 말까지…”
그녀는 깨달았다.
대화의 목적은 '관계 맺기'가 아니라 '인정받기'였다는 것을.
겉보기엔 반듯하지만, 정작 그의 내면은 누군가를 수평적으로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음은 45세의 돌싱남이였다.
라운지에서 찍은 고급스러운 프로필 사진,
정제된 말투,
“마음은 따뜻한 사람입니다”라는 소개 문구.
그는 처음부터 ‘빠르게 만나자’고 제안했다.
K씨는 신중한 타입이었다.
“3일 이상은 대화를 나눠야 얼굴을 보죠.”
그녀는 원칙을 정해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걸 '비효율적'이라며 웃었다.
“난 여자 분위기 보면 알아요.
성실한 사람인지, 그냥 심심한 건지.”
그 말에 K씨는 속으로 문을 닫았다.
관계의 본질이 아니라,
자신의 ‘안목’을 증명하려는 그에게서 정이 떨어졌다.
겉으로는 친절했지만,
그의 친절은 온기를 나누기 위함이 아닌 ‘자기 연출’이었다.
데이팅앱의 대화는 놀랄 만큼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안녕하세요”
“직장은 어떤 쪽이세요?”
“주말엔 뭐하세요?”
“카톡 하실래요?”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지만,
감정은 겉돌고 진심은 묻히기 일쑤다.
K씨는 이걸 ‘감정의 배달앱’이라 불렀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관심이 식으면 조용히 로그아웃.
사람 사이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느낌이랄까…”
그녀가 만난 또 다른 남성은 대화 중 늘 ‘배려’를 말했지만,
정작 약속이 잡힐 때가 되자 약속을 미루고,
어느새 카톡도 조용해졌다.
그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40대 후반의 이혼남이었다.
매일 아침 인사와 저녁 안부,
꾸밈없고 따뜻한 말들.
함께 걷는 공원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일상을 천천히 나누었다.
“그 사람한테는 마음이 조금 열렸어요.
설레기보단, 편안했죠.”
세 번째 만남 이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심이에요.
이제는 조심스럽게라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그 말 이후,
그는 사라졌다.
메시지에 답이 없었고,
앱 프로필도 비활성화됐다.
K씨는 며칠 동안 이유를 곱씹었다.
“내가 뭘 실수했나…?
그게 아니면,
그냥 겁이 난 걸까…?”
결론은 없었다.
그저, 한참을 혼자 있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연락이 끊긴 건,
애초에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
아니면…
그 사람도 외로움의 끝에서,
감정을 감당할 힘이 없었던 걸지도.”
그녀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이번 사람도 금방 사라지겠지.”
예상하면 덜 아프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덜 무너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말도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선택되고 싶은 사람이야.
그런 마음은… 사라지질 않네요.”
그녀는 앱을 지우고,
다시 설치하고,
또 지웠다.
외로움이 감정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데이팅앱은
마지막 남은 ‘인간관계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반듯한 프로필,
고급스러운 사진,
정제된 문장.
하지만 그 너머에는 외로움과 허세,
상처와 고립이 숨어 있다.
사람들은 진심을 나누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진심을 꺼내면 누군가는 멀어진다.
이 앱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일부, 편집된 조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씨는 오늘도 앱을 켠다.
“혹시 이번에는,
조금 덜 외로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