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과 로맨스 스캠, ‘사랑’을 미끼로 한 사기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설계한다.

by 고요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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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너무 달콤했어요.
그래서 더 무서운 줄 몰랐어요.”

지인 H씨가 데이팅앱에서 당한 일을 들었을 때,

나는 이 말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녀는 이혼 후 4년째였고,

자녀 둘은 모두 독립한 상태였다.
늦은 밤이면 리모컨을 든 채 리빙룸 한구석에 앉아 있던 그녀는,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더라.”

그녀가 데이팅앱을 시작한 건,

그렇게 조용하고도 쓸쓸한 감정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를 만났다.




UN 파병 중인 미군 장교입니다.


H씨는 처음엔 영어로 인사를 받았다.
‘Hi, pretty lady. I love your eyes. Do you speak English?’
프로필 사진은 군복을 입은 미국 장교.
파병지에서 아이들을 도와주는 장면, 헬리콥터 옆에서 찍은 셀카,
이상할 정도로 잘 정리된 사진들이었다.


“UN 소속으로 중동 파병 중이고,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고국에 있는 여자를 만나 진지한 관계를 시작하고 싶다.”


그는 매일 아침 안부 인사를 보냈고,
식사 전엔 꼭 ‘Have you eaten?’이라고 물었다.
하루가 끝나면 “You are my peaceful dream”이라는 말과 함께 하트를 보냈다.


H씨는 어느새 그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오랜만에 ‘여자’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랑 이야기할 때는… 내가 누군가의 기대 대상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자신이 “군인 신분이라 외부 계좌 접근이 어렵다”며
한국으로 옮길 짐의 관세비용을 대신 내달라고.

그가 준 운송회사의 링크는 정교했고,
메일도 공식적인 문체로 구성돼 있었다.

“700달러만 대신 입금해주면, 한국에 도착하는 즉시 갚겠다.”


다행히 H씨는 이 시점에서 의심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검색 끝에, ‘로맨스 스캠’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말을 잘할까”


이런 피해 사례는 H씨만의 일이 아니었다.

내 주변의 K씨는 ‘기러기 아빠’라는 남성을 만났다.

“외국에서 사업 중이고, 아내와는 이혼 예정 상태입니다.
아이들은 한국에 있어서 매달 송금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시지를 보내며,
K씨의 회사생활, 점심 메뉴, 감기 증세까지 체크했다.
그런 관심은 이혼 후 무뎌진 감정을 자극했다.


하지만 두 달 뒤, 그는 말했다.

“갑작스런 비즈니스 자금 문제로
잠깐만 200만 원만 도와줄 수 있겠어요?”


이 남자는 말이 너무 부드러웠고,
늘 “미안해요, 이렇게 말해서”라고 시작했다.

“정말 사기꾼이 저렇게 예의 바를 수 있구나,
그때 처음으로 느꼈어요.”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고,
상대는 그 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





또 다른 유형 – ‘코인 사업가’와 가짜 투자


또 다른 친구 M씨는 40대 후반의 싱글맘이다.
그녀는 데이팅앱에서 '비트코인 관련 IT 창업가'를 만났다.


그는 10일간 매일 같이 안부를 물으며,
“일상이 단조롭지 않냐”며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그가 제안했다.

“요즘 내 주변은 다 코인으로 수익을 내.
간단한 어플만 설치하면 내가 대신 운용해줄게.”


그 어플은 실시간으로 수익률이 표시되었고,
그녀는 처음에 30만 원을 넣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33만 원으로 바뀌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어요.
이 남자와 함께라면… 미래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추가 입금을 요구했고, 연락은 그 직후 끊겼다.





그들은 어떻게 ‘감정’을 악용하는가


로맨스 스캠은 단순한 경제 사기가 아니다.
그들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정확히 조준한다.

“당신의 눈이 오늘따라 슬퍼 보여요.”

“내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은, 당신 메시지를 보는 순간이에요.”

“이제는 당신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말들은, 수천 번 복사되고 붙여넣어진 ‘스탠다드 멘트’다.

하지만 외로움에 젖은 이에게는
그저 복붙된 말도 진짜 감정처럼 느껴진다.





피해를 막는 5가지 ‘초기 징후’


프로필이 지나치게 완벽하거나, 사진이 모델급일 때
– 검색해서 ‘도용 이미지’일 가능성 확인


첫 대화에서 외국인이며, 한국에 곧 온다고 말할 때
– 파병 군인, 의사, 기술자 등의 직업을 가장하는 경우 많음


이메일, 외부 사이트로 대화를 유도할 때
– 앱 내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시도


빠른 시간 안에 신뢰와 감정적 유대를 강조할 때
– “사랑한다” “내 인생에 나타나줘서 고맙다” 등 과도한 표현


작은 금액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시도
– 택배비, 수수료, 수속비 명목으로 접근





사랑을 시작할 자유, 의심할 권리


피싱과 로맨스 스캠은,
기술이나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사람의 외로움'을 읽을 줄 아는 전문가다.

그래서 사랑을 가장한 그들의 대사는 언제나 달콤하고,
그래서 더 깊게 베인다.


지인 H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내게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보다
내가 그 말들에 설렜다는 사실이 더 아프더라고요.”


그녀는 이후 데이팅앱을 지우고,
다시는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들은 또다시 앱을 켜요.
외로움은 언제나 다시 찾아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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