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조건들 – 나이, 사진, 직업으로 사랑을..

스와이프 속 나는 누구를 선택하고 있는가

by 고요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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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스와이프는 ‘관심’, 왼쪽은 ‘패스’.
그 버튼 하나가 내 하루 기분을 좌우하더라고요.”


이 말을 한 건, 데이팅앱을 2년째 사용 중인 35세 직장인 J씨였다.
그는 매일 아침·점심·퇴근 후,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수십 명의 프로필을 훑어보며 스와이프로 인사를 대신했다.


“프로필 사진만 보고 ‘이 사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더라고요.”
J씨가 자신의 스와이프 패턴을 분석하며 말했다.
“사진 속 표정이나 배경, 옷차림에 따라

‘이 사람과 한 번쯤은 이야기를 나눠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스와이프는 단순한 터치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누군가를 ‘가능성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혹은 ‘내 목록에서 제외된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걸,
느닷없이 마주하게 된다.




나이와 자녀 여부는 무심한 경계선


38세의 싱글 F씨는 최근 데이팅앱에서 50대 후반 남성과 연결되었다.
프로필에는 “자녀 없음, 배우자 없이 자유로운 삶”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만나자 그는 말했다.

“사실 기러기 아빠로 살다가,

이제는 아내와도 아이들과도 헤어졌어요.”


F씨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가 조심스러이 덧붙인 역사의 무게에
이야기가 이어졌다.


스와이프할 때 사람들은 ‘나이’ 단 하나만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나이가 높으면 주로 자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자녀 있으면 시간 없는 사람”이라는 선입견도 생긴다.


하지만 실제 만나면,
“아이 키우며 느낀 책임감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단순한 스와이프 기준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삶을 걸러내는 경계를 만들어낸다.





직업은 브랜드가 되고, 사진은 명함이 된다


J씨는 42세의 마케터였다.

신사동의 예쁜 카페 사진을 프로필에 올리면서
“크리에이티브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라는 소개를 적었다.

그녀가 만난 사람은 서울 소재 로펌의 변호사였다.
그는 그 소개를 보고 “직업 맞추는 사람은 보기 힘들더라”며 반가워했다.

러나 그는 이어 말했다.

“사람이 면접 들어오듯 프로필 보고 먼저 판단하더라고요.
‘이 사람은 뭘 할까?’부터 생각하게 되죠.”


우리는 사진이 곧 ‘나’를 말한다고 믿는다.
캠핑 사진은 자유로운 영혼,

운동회 사진은 가족지향형,
업무 미팅 사진은 책임감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식으로.


사진은 ‘분위기 명함’처럼 작동하지만,
실제 성격과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실물보다 먼저 평가를 받고,
우리는 그 시선을 스스로 욕망하기도 한다.





외모 우선, 설명은 그다음이다


35세 여성 H씨는 프로필 사진을 자주 바꿨다.
에디터 답게,

감성적 필터를 입히거나
짧은 단발 머리 스타일링을 공유하면서
꾸준히 외모를 브랜딩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는 바로 오지만,
대화가 들어오면 템플릿식 질문이 많아요.


‘주말에 뭐해요?’

‘음악 취향은요?’

같은 것들이요.”


외모 중심의 선택은
재미는 있지만 깊이는 없다.
사람들은 사진을 넘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꺼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좋아요는 그저 ‘누굴 더 보고 싶은지’의 신호일 뿐,
그 신호가 무슨 말을 전하려는지에선
우리는 자주 벗어나게 된다.





‘조건’은 안전장치인가 자기검열인가


42세 여성 N씨는 자기소개에 이렇게 썼다.

“서울·39살·비흡연·반려동물 없는 사람 환영합니다.”

그녀에겐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 기준이
자신이 타인의 기준에 들까

두려워지는 이유가 되었다고 했다.


“그 조건이 도리어 나를 보호하는 문이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을 가두는 울타리였는지도 몰라요.”


조건은 상호관계의 트레이드오프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대를 선택함으로써

나도 동시에 차단된다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데이팅앱에서 깨닫게 된다.





스와이프 문화가 만든 관계의 얄팍함


J씨는 말했다.

“이 앱에서는 10장도 넘는 사진을 올리는 게 기본이고,
그걸 일일이 다 봐요.
근데 실제 대화는 두세 줄만 읽고 답하고,
또 스와이프하러 떠나죠.”


데이팅앱은
관계를 시각적인 순간의 호감으로 압축하고,
그 순간 이후의 관계는 던져지는 것이다.
그 반복이 주는 피로감은,
소통의 깊이보다 소비의 가벼움을 선택하게 만든다.




선택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본다는 것


“사진보다,

그 사람이 웃을 때

작게 돌아가는 눈가를 보고 싶어요.”

J씨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사진, 나이, 직업... 모두 ‘조건’일 뿐,
그 조건이 아닌 관계의 온도와 진심을 보려는 사람은
스와이프 버튼 너머에 있다.


이 공간은 분명히
“사람을 브랜드처럼 선택하는 시장”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사진 한 장,

나이 한 줄,

직업 한 단어로 시작되었지만
그 끝에는,
예측 불가능하고 실존적인 ‘누군가’가 있다.

우리는 그 끝을 향해,
스와이프를 멈출 용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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