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묻지 않는 하루(돌싱녀의 조용한 고백)

고독한 퇴근길,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

by 고요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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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지 벌써 1,460일이 지났다.

1년, 2년... 그렇게 계산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날짜를 세지 않게 된다.
그저 오늘을 버티고, 또 내일을 맞이할 뿐이다.



퇴근길,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해 질 무렵의 지하철 안.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돌아가는 중이다.
누군가는 삼겹살 거리가 든 봉지를 들고 있고,
누군가는 카톡으로 “곧 도착해”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미소 짓는다.

나는… 그저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무 메시지도 없는 채팅창.
읽지 않은 메시지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같은 길인데, 기분은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그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집 앞 골목의 가로등 불빛에 괜히 눈물이 고인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연다.
불 꺼진 집,
아무런 소리도 없는 거실,
살짝 퀴퀴한 냄새.
하루 종일 아무도 없었던 공간의 공기.
내가 들어서야 전등이 켜지고,

내가 움직여야 냉장고 문이 열린다.


결혼할 땐 그랬다.
“집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야.”
하지만 지금 내게 집은,
그냥 몸을 눕힐 수 있는 사적인 쉼터일 뿐이다.



혼밥, 그 적막한 시간


저녁을 차리는 시간.
예전엔 반찬 두개, 국이나 찌개 하나는 기본이었다.
된장찌개 하나 끓이고, 아이들 좋아하는 반찬 한두개.
남편의 입맛에 맞는 맵지 않은 요리도 한 쪽에.


지금은?
그냥 즉석밥 하나.
계란후라이 하나.
오이나 김치 하나 있으면 그걸로 끝이다.


식탁에 혼자 앉아
티비도 켜지 않고 밥을 먹는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나도 아무 말 없이 씹는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입 안 씹히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가끔은 TV를 켠다.
‘소리라도 있으면 덜 외로울까’ 싶어서.
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너무 웃고 있고, 너무 화려하다.
그래서 금세 꺼버린다.
그들의 소란스러움이,
내 고요함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친구들과의 모임, 그러나 마음은 혼자인 시간


한 달에 한두 번쯤, 오랜 친구들을 만난다.
같은 나이 또래의 여자들.
대부분은 아직 남편과 함께 살고 있고,
자녀들도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다.

“남편이 또 잔소리해서 죽겠어.”
“애가 대학교 등록금 때문에 난리야.”
“명절 지나면 진짜 다신 시댁 안 간다니까?”


나는 웃는다.
가끔은 공감하는 표정을 지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한다.
‘그래도 너희에겐 돌아갈 사람이 있잖아.’
‘부딪혀도 대화할 상대가 있잖아.’
‘잔소리라도, 같이 사는 사람은 있잖아.’


누구도 묻지 않는다.
“넌 요즘 어때?”라고.

그건 아마도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내 얘기를 꺼내지 않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나는 이제 익숙해졌다.
아무도 묻지 않는 하루에.




이혼 후, 처음 맞은 겨울밤


이혼 후 첫 겨울밤을 기억한다.
12월 초, 칼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난방을 켜도 추웠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그날, 갑자기 정전이 났다.
불이 꺼지고, 전기포트도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나는 촛불을 꺼내 들었다.

손이 떨렸다.
공포 때문이 아니라…
그 작은 불빛 속에서 나는
너무 작고, 너무 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참을 촛불을 바라보다가,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두꺼운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들어갔다.

눈물이 나서 운 것도 아니고,
딱히 슬퍼서 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조용히.


그날 이후, 나는 밤마다 조용히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혼잣말을 한다.
“오늘도 잘 견뎠어.”




적응이라는 말의 무게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혼자 사는 것도 나름 자유롭고 좋아.”
“이혼은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응’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많은 상처를 내포하고 있다.

혼자 밥 먹는 데 익숙해지고,
말 없이 집에 들어오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건… 어쩌면 살아내기 위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가끔 문득
그 사람과 살던 집을 떠올린다.
늦은 밤 다퉜던 기억도,
아이들 재우고 함께 마시던 맥주 한 캔도.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할 오래된 추억이 되었다.

그게 이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무도 묻지 않는 기억'



그래도, 하루는 흘러간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책 한 권을 펴 들었다.

읽지는 않는다.
그저 펴만 놓는다.
그래도, 그 시간이 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조용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혼자 있는 게 편해?”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건 편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이 삶이 ‘나’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지나고,
밤이 깊어지고,
불을 끄고 누웠다.


오늘도 누구도 묻지 않았다.
“오늘 어땠어?”라는 말 한마디.

하지만 나는 속으로 답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오늘도 잘 견뎠어요.
내일도… 살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