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의 '괜찮은 사람'이 되는 법
이혼한 지 4년째.
나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한다.
괜찮은 척을 너무 오래해서, 가끔 진짜 괜찮은 줄 착각할 정도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알게 된 동네 모임.
처음엔 반가웠다. 집과 회사만 오가는 삶에 작은 활기가 될 것 같았다.
카페 한켠, 여자 여섯 명이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각자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들고, 밝은 표정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 중 한 명이 반갑게 내게 묻는다.
“언니, 애는 몇 살이에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른다.
“지금 스물셋이요. 둘 다 대학생 됐어요.”
그리고 살짝 웃는다. 너무 자연스럽게.
누구도 묻지 않는다.
“아빠는 뭐 하세요?”
“집은 어디 사세요?”
그건 나도 모르게 풍기는 무언가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내 SNS에서 봤기 때문일까.
그날도 나는 커피를 다 마시지 못했다.
한참 아이들 학원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누구네 애는 의대를 준비하고, 누구네는 입시학원에서 고등학생 상담을 해준다나.
그러다가 은근히 슬쩍 남편 자랑이 이어진다.
"요즘 신랑이 내가 늙었다고 놀리는 거 있죠~?"
나는 그냥 웃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마치 내 얘기처럼 맞장구를 친다.
하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물어본다.
“난 왜 여기 있지?”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별다른 이유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내가 눈물을 참는 데 능숙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한 번도 울지 않은 게 아니었다.
울고 있다는 걸 못 느낄 만큼 무감각했던 거다.
이혼 후, ‘가족 단위’ 모임은 피하게 됐다.
부부 동반, 아이 동반, 혹은 ‘엄마들’끼리의 모임.
그 안에 나는 늘 어색했다.
나는 더 이상 ‘엄마’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라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어떤 역할도 아닌 ‘그냥 나’였다.
하지만 ‘그냥 나’는 사회에서 너무 애매하다.
어정쩡하고, 설명이 필요한 사람.
나는 그 설명이 피곤했다.
“이혼했어요.”
“혼자 살아요.”
“지금은 괜찮아요.”
그 말들을 하는 순간, 상대의 표정이 변한다.
안쓰러운 눈빛, 혹은 당황한 미소.
그것들이 나를 더 작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웃고, 괜찮은 척하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쪽을 선택했다.
가끔 누군가가 묻는다.
“언니, 주말엔 뭐 해요?”
“언니도 여행 가야죠~ 같이 갈래요?”
나는 얼버무리며 말을 돌린다.
주말엔 뭐 하냐고?
가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본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기도 한다.
가끔은,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혼자 잔잔한 음악을 틀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살았던 그 시절을 잠시 떠올린다.
다정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갈등은 생각보다 조용히, 서서히 스며들었고
사랑은 마지막까지 서로의 상처를 핑계 삼아 외면했다.
그렇게 끝났다.
이혼을 말한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그게 내가 더 강해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친 사람이 먼저 나왔을 뿐이다.
주말에 나가는 여행은커녕,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눈물이 나는 날이 있다.
두부 한 모, 바나나 한 송이.
모두 1~2인분이다.
작아진 장바구니를 보며,
“이게 내 삶인가…” 싶어 한숨이 나온다.
다정한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내 고독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힘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날은 “힘안내도 돼요”라는 말이 더 필요하다.
그 말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조금 덜 조이게 할 텐데.
나는 요즘도 괜찮은 척을 연습한다.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회사에서는 늘 웃는다.
“역시 ○○팀장님은 늘 여유 있으시네요~”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다 지나가죠.”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아침마다 얼마나 기지개를 켜는 게 힘든지,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어떻게 쥐어짜내는지.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늘 눈치를 본다.
흘리지 않기 위해 애쓰고,
부서지지 않기 위해 틈을 막는다.
나답게 살기보단,
보통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삶.
그게 얼마나 고단한지,
아마 같은 시간을 지나온 사람은 알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카페에서 앉아 책을 읽다가
옆자리 여자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내 친구, 이혼하고 너무 잘 살아. 혼자 여행도 가고, 와인도 마시고… 그게 진짜 멋있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나처럼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나는 아직 와인을 따를 줄 모른다.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두렵다.
혼자 밥 먹는 건 이제 익숙해졌지만,
혼자 웃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웃는 연습'을 한다.
고백할 수 없는 감정이 많아질수록,
괜찮은 척은 더욱 능숙해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웃고 있는 이 순간,
나처럼 어딘가에서
혼자 조용히 울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만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 다 이렇게 살아내고 있어요.”
“오늘 하루도 잘 버텼네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