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커피 한 잔

혼자 보내는 주말의 풍경

by 고요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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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어젯밤 분명히 끄고 잤다.
그래서 아침에 눈이 떠졌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오늘은 출근 안 해도 되는 날이구나"였다.


주말 아침의 고요함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집 안에는 어떤 소리도 없고,
현관 너머로 들려오는 이웃의 발자국 소리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만이
내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불 속에서의 몇 시간


이불 밖으로 나가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괜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뉴스를 한 바퀴 돌고,
남들이 올린 아침밥 사진을 무심히 훑는다.
“주말엔 무조건 브런치~”
“남편이 차려준 아침, 완전 감동!”

나는 휴대폰 화면을 꺼버린다.
괜히 속이 더 허전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며 생각한다.
"아침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예전엔 주말 아침마다 남편과 아이들의 입맛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식탁에는 늘 국이 있고, 계란말이가 있었고,
식후엔 믹스커피 두 잔을 내려 마셨다.

지금은?
뭘 먹든 말든 상관없다.
나 혼자니까.


결국 11시쯤이 되어서야 이불 밖으로 기어 나온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눈은 반쯤 감긴 채 부엌으로 향한다.



조용한 주방, 조용한 커피


커피포트를 켜고,
가장 자주 쓰는 머그잔에 커피믹스 하나를 툭 떨어뜨린다.
이 집에서 가장 익숙한 움직임이다.
'커피를 타는 일'
그건 나를 위해 매일 반복하는 유일한 의식 같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들고 창가로 간다.

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독 하얗다.
주말 아침의 햇살은 왜 이렇게 쓸쓸할까.
사람들이 모두 바쁘게 움직이는 평일과 달리,
주말엔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

커피를 홀짝이며,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창밖을 바라본다.
나름 괜찮은 장면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같이 봐줄 사람은 없다.



배달앱이 된 시장


점심은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배달앱을 연다.
‘혼밥 추천’이라는 메뉴가 보인다.
혼자 먹기 좋은 1인 세트.
마치 이 세상이 이제는 나 같은 사람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듯하다.


처음 혼자 배달시킬 땐 망설여졌다.
‘이 집은 늘 혼자 시키네’라는 생각을 가게에서 하지 않을까,
‘이 나이에 혼자서 순대국?’ 같은 시선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이젠 익숙하다.
배달 기사님은 문 앞에 조용히 음식을 두고 가고,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주말 시장의 풍경도 가끔 그립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상인들의 목소리가 오가는 그 활기.
“아줌마, 이거 서비스로 더 드릴게요!”
그런 소리를 들을 일은 이제 없다.

혼자 장을 보면 양이 너무 많아 버리기 일쑤고,
그나마 싱싱하게 먹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마트폰 속의 시장을 열고,
모니터 너머의 냄새를 상상한다.



무채색으로 물든 주말


가끔, 화장대 앞에 앉는다.
이유는 없다.
단지 거울 속 내 얼굴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서.
한때는 아이들 등원시키기 전에,
혹은 남편이 보기 전에
조금 더 생기있어 보이려고 화장을 했다.


지금은?
화장품이 점점 줄지 않는다.
립스틱은 몇 년째 그대로고,
파운데이션도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누구를 만나지 않으니, 꾸밀 이유도 없다.

주말이면 머리는 묶지도 않고,
긴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 하나.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텔레비전을 켜면,
예능에서는 커플 여행이 나오고
드라마에선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다.

나는 채널을 돌린다.
그리고 결국 TV를 끈다.
색이 넘치는 화면 속에서
나는 더 흐려지기 때문이다.


주말이란 단어는
예전에는 ‘쉼’이었고,
지금은 ‘멈춤’이다.



전화 한 통 없는 오후


토요일 오후는 유난히 길다.
하고 싶은 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딱히 없다.
전화가 울리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띠링’ 하고 오는 메시지 하나가
심장을 뛰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광고다.
쇼핑몰 세일,
배달앱 쿠폰,
신용카드 혜택 안내.


한때는 하루에 20통 넘게 오가던 연락들이
지금은 며칠씩 조용할 때도 있다.
그런 날엔 혼잣말이라도 한다.
“뭐라도 좀 와라…”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한다.
'혹시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닐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면
벌떡 일어난다.
“그래, 뭐라도 하자.”



나만의 의식 – 구워먹는 밤고구마


주말 저녁이면
작은 오븐에 고구마를 굽는다.
대단한 요리는 아니다.
하지만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질 때면
마음이 조금 포근해진다.


예전엔 아이들이 고구마 껍질을 벗기며
"엄마, 이거 완전 꿀이야!" 하며 좋아했다.
그 소리는 없지만,
그 기억만으로도 고구마는 따뜻하다.

하나씩 꺼내 접시에 담고,
조용히 먹는다.
말 없이.

그러다 창밖을 본다.
벌써 어둑해진 거리.

토요일이 이렇게 흘러간다.
시작도, 끝도 없이.



그래도, 커피 한 잔은 나를 지킨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작은 불을 켜고
커피 한 잔을 더 탄다.
이번엔 따뜻한 아메리카노.
오늘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는 의식처럼.


이 커피는
누구와 나누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나를 위해.
내가 내 옆에 있어주기 위해.


혼자 보내는 주말이란,
겉으로 보면 평화롭지만
속은 은근한 울림으로 가득하다.

그 고요함을 견디는 힘은,
결국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온다.


조용한 이불 속,
한 잔의 커피,
배달앱 속의 혼밥 세트,
오븐에서 구워지는 고구마 한 조각.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용히 숨을 고르며
나는 내 주말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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